1944년 아버지의 일기2
10화 소설, 영상나레이션.
https://youtu.be/dwocAwxZiUg?si=5XG5uJv8TolwBkjc
1944년 가을.
교문을 나서는 발길 아래로 바스라지는 낙엽 소리가 서글픈 만가처럼 들리는 가운데, 나의 그림자가 유난히도 길고 야위어 보였다. 무기 정학. 내 이름 석 자 옆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그 네 글자가 심장을 짓눌렀다.
조선의 수재라 칭송받던 소년의 긍지는 일본인 교관의 군홧발 아래 무참히 짓밟혔고, 나는 이제 패잔병의 초라한 뒷모습으로 읍내 거리를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서산마루에 걸린 노을은 마치 피를 토해낸 듯 선연하게 붉었고,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조차 고개를 숙인 채 처량한 배웅을 건네고 있었다. 억울함보다는 허망함이, 분노보다는 예감된 슬픔이 앞선다.
내가 쌓아 올린 학문은 이 혼탁한 시대를 건너기에 이토록 희미하고 무력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사무친 회심만이 밀려든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새소리 너머 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곧 공출로 텅 빌 들판은 주인 잃은 무덤처럼 황량했고, 그 빈자리에는 허기진 아이들의 울음소리만 자욱할 것이었다. 사건은 아침 조례가 끝난 뒤 찰나의 순간에 터졌다.
쉬는 시간, 옆자리 친구의 귓속말에 무심결에 대답한 조선어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등 뒤에 유령처럼 서 있던 일본인 교관의 귀에는 그것이 반역의 주문처럼 들렸나 보다.
손바닥이 공기를 가르며 내 뺨 위로 날아들었고, 나는 속절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국어를 쓰지 않는 자, 황국의 학도 자격이 없다!"
그 길로 시작된 기합은 해가 산마루에 걸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거운 체벌 목판을 어깨에 메고 뙤약볕 아래 무릎을 꿇은 채, 나는 소년의 자부심이 땀방울과 함께 흙먼지 속으로 비굴하게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선생들은 나를 오물 보듯 고개를 돌렸고, 교실 안의 동기들은 숨을 죽인 채 나의 몰락을 목격하고 있었다. 더욱 가슴을 후벼 판 것은 정학 처분이 내려진 후였다. 교관은 "조선놈의 지혜 따위는 이제 필요 없다"며 비시시 웃음을 흘렸다.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징벌이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운 공들인 지식 세계를 통째로 시궁창에 처넣는 모멸이었다.
1944년 가을 무기정학 다음날,
간밤에는 열병처럼 몰려오는 치욕에 몸을 뒤척이며 몇 번이고 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환영처럼 떠오르는 것은 학교의 붉은 벽돌이 아니라, 마을 어귀 노을 아래서 망부석처럼 서 계시던 어머니의 마른 어깨였다.
정학 처분을 받고 패잔병처럼 읍내 길을 걸어 내려올 때, 나의 가슴속엔 오직 어머니께 이 소식을 어찌 전할까 하는 두려움뿐이었다. 집 근처 고갯마루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대문 밖까지 나와 길 끝을 응시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소문은 바람보다 빨라, 이미 어머니 아들의 몰락은 온 동네의 가십거리가 되어 있었나 보다.그녀는 상처 입은 입술과 흙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달려와 나의 두 손을 꽉 잡으셨다.
거친 손마디에 배어 있는 흙냄새와 그 온기가 닿는 순간, 하루 종일 억눌러왔던 울분이 둑이 터진 듯 터져 나왔다.
"어머니, 제 입술이... 내 혀가 죄라네요."
나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흐느꼈다. 어머니 또한 나를 부둥켜안고 목을 놓아 통곡하셨다.
그것은 단순히 자식의 앞길이 막힌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가냘픈 생령들이 서로의 고통을 확인하며 토해내는 비명이었다.
어머니의 눈물이 내 목덜미를 뜨겁게 적실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낙오자라 손가락질하고, 동무가 나의 자리를 찬탈할지언정, 이 땅의 흙과 어머니의 품만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머니와 함께 지는 노을을 등지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나의 이 청청한 꿈이 꺾여버린 그 저녁, 우리 모자의 통곡 소리만이 황량한 들판으로 공허하게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