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일기/1
9화 영상 나레이션
https://youtu.be/nRRFM-n9iIA?si=P5aLjhFHsqr2ulji
1944년 가을
오늘 나는 또다시, 이름을 잃은 아침을 맞았다.
조상의 이름 대신 낯선 신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지식은 이 오탁한 시대를 건너기엔 너무나 무력하고 가냘픈 등불일 뿐인가.
안개가 자욱한 새벽, 읍내 중학교의 학생들은 줄지어 언덕 위 신사로 향했다.
읍내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자리에 거대한 돌계단이 놓여 있었고, 일본의 신들을 모신 건물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은 신앙의 공간이라기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드는 장소에 가까웠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삼나무 숲 사이로 드러난 조거(鳥居)의 붉은 기둥은, 피처럼 낯설고 무겁게 서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날 때마다 목 안쪽이 서늘하게 조여왔다. 나는 그것이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끝내 구분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섞여 걸었다.
학교 전교생이 줄지어 산길을 올랐다. 운동장에서 출발할 때부터 소란은 사라진 듯했고, 발자국 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교사의 구령이 간간이 들렸지만, 그것마저도 산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희미해졌다.
나는 줄의 중간쯤에서 걸었다. 교복 소매 끝이 손목을 스치며 차갑게 젖어 있었고, 가슴 안쪽에서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나는 앞사람의 등을 보며 걸었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펼쳐진 시간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훈도들의 구두 소리가 칼날처럼 단단한 땅바닥을 짓이기며 다가올 때마다, 나의 의식은 쪼그라든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토-호-요-하이(とうほうようはい)
비명처럼 터져 나온 "동방요배"라는 구령은 날카로운 채찍이 되어 우리들의 등을 후려쳤다.
꺾인 허리 사이로 보이는 것은 오직 짓밟힌 검은흙바닥뿐이었다.
대대로 그 흙에 뿌리내리고 단잠을 자던 우리네 조상들의 넋이, 저 붉은 조거의 그림자 아래로 강제로 끌려 나와 무릎 꿇려지는 비참하고 처량한 모습이었다.
성전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이미 밥사발마저 앗아가더니, 저들은 우리들의 여린 영혼까지 한 줌 제물로 바치라 매일 잔혹하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안개 낀 신사 마당에는 여학생들이 이미 죽은 듯 도열해 있었다. 남학교와 여학교가 한 공간에 섞여 있었으나, 공기 중에는 서로를 향한 호기심 대신 질식할 것 같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교복의 색은 서로 달랐을지언정, 그들을 묶고 있는 서늘한 고요는 한 몸처럼 닮아 있었다. 여학생들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고요했다. 정갈하게 땋아 내린 머리끝에는 자주색 비단 끈이 눅눅한 안개를 머금어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꺾인 꽃줄기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들은 텅 빈 시선을 바닥에 박제한 채, 앞사람의 그림자를 이정표 삼아 기계적으로 발을 뗐다.
가끔 일렁이는 치맛자락과 젖은 머리끈의 미세한 떨림만이, 그들이 아직 숨을 쉬고 있음을 알리는 가냘픈 신호였다.
신사 입구에 들어서자 공기는 한층 더 읍습하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돌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의 발소리는 습기에 먹혀 들리지 않았다.
등 뒤를 집요하게 때리는 교사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되어 아이들의 목을 조였다.
수조 앞에서 흔들리는 대나무 바가지 속의 물은 소름 끼칠 정도로 맑았다.
나는 홀린 듯 앞사람을 따라 손을 씻고 입을 헹구어 냈다. 차가운 물이 입술에 닿는 순간, 그것은 정결한 의식이 아니라 내 안의 마지막 자아까지 씻어내 버리는 지우개처럼 느껴졌다.
삼키지 못하고 뱉어낸 물이 돌 틈으로 비루하게 흘러갈 때, 나는 내 영혼의 가장 연한 살점 하나가 함께 빠져나가 영영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아찔한 상실감에 젖어들었다
신사참배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리 조상들에게 일본의 신도시설인 '신사'에 강제로 절을 하게 했던 종교적·정치적 강요였습니다.
단순히 절을 하는 행위를 넘어, 우리의 정신과 민족혼을 말살하고 일본 천황에게 절대 충성하게 하려는 치밀한 통제 수단이었죠. 거부하면 투옥과 고문이 이어졌던 그 서슬 퍼런 시절, 누군가는 신념을 위해 저항했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