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읽고

카뮈의 부조리(absurde)

by 빛날현


선택해 보라.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지만 행복한 엄마’와 ’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불행한 엄마’ 중에 택일해야 한다면, 그럼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행복한 엄마는 없어?’ 감히 답부터 말하고 싶다. 있다! 있지만 그 엄마에게도 분명 다른 결핍이 있다. 보이는 결핍과 보이지 않는 결핍으로 나뉠 뿐.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제목 그대로 삶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불행해 보이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생각을 흔든다. 글을 읽으며 그간 각자의 경험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설 속 인물들에게 공감하며 삶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것이다. 이렇듯 작가가 말하는 모순은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세계와 깊이 맞닿아 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absurde)란,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는 세계가 충돌할 때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 충돌 자체가 부조리이며 이 침묵을 부조리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대표작 <이방인>에서 살인을, <시지프 신화>에서는 자살을 통해 부조리를 이야기하며 ‘삶에는 본래 의미가 없지만, 그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가치’라고 말한다. 또 부조리를 통해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카뮈는 허무주의를 거부한다. 의미가 없으니 죽자거나 의미가 없으니 아무렇게나 살자가 아니다. 카뮈는 이를 철학적 도피라고 비판한다. 부조리는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삶이 공정하고 설명 가능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순> 속 인물들 역시 이러한 부조리한 세계 속에 놓여 있다.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는 성실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모는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선택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산다. 이 대비는 삶의 결과가 도덕이나 노력과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안진진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어떤 삶은 불행하고, 어떤 삶은 그렇지 않은지,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중요한 점은 그녀가 이 부조리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뮈는 부조리를 해결하려 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그것을 똑바로 인식한 채 살아가는 태도를 강조한다. 안진진 역시 삶의 모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혼란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마주한다.


카뮈의 부조리 철학은 인간의 선택보다 먼저, 세계 자체가 지닌 불합리성에 주목한다. 인간은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찾고자 하지만, 세계는 그 기대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삶의 결과가 노력이나 도덕성과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 속 일상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로서 평범한 공감을 일으킨다.


또한 <모순>은 희망적인 결말이나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카뮈의 철학처럼, 이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에 주목하게 한다. 안진진은 대비되는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로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불행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그 환경에 완전히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이나 이모의 현실적인 삶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관계와 사랑을 선택하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항상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진진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될 대로 되라는 포기가 아닌, 선택을 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 안진진의 의지는 카뮈가 말한 것처럼 부조리를 인식한 후에도 삶을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태도로 하나의 ‘반항’이다. 카뮈는 이 반항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살아가는 태도라고 정의하였다. 안진진의 고민과 태도는 삶의 모순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모순을 안은 채 살아가려는 태도로 보인다. 이것이 ‘부조리의 인정’이 아닐까? 이것이 ‘삶의 출발점’이 아닐까?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삶이 반드시 이해되거나 정당화될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중요한 것은 모순적인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가려는 태도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태도! 억만금을 줘도 못 사고 세습되지도 않으며 학벌로도 얻을 수 없는, 유일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태도인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