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뉴스에 재미있는 여론 조사 결과가 소개된 적이 있다. 기혼 남성의 행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였다. 돈이었을까? 아니었다. 1위가 바로 아내의 외모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무려 40% 넘는 사람들이 행복의 이유 1위로 예쁜 아내를 꼽았다는 것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도.. 이를 듣고 ‘외모 반성이라도 해야 하나’ 웃픈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나에게 솔직하게 묻는다. ‘만일 내가 남자 의사라면 예쁜 여자와 결혼하기를 희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본능적으로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여기 한 젊은 의사 게이조와 예쁜 여자 나쓰에의 가정을 낱낱이 훔쳐본 소설이 있다. 그러나 이건 한 가정의 비극과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가져 봤던, 누구나 열망했던 순간들의 기록일 수 있으며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의사가 아님에도, 예쁜 여자가 아님에도, 명랑한 소녀가 아님에도 그들의 사건에 일희일비하며 가슴이 뛰고 흥분되었다. 그들을 통해 각자의 서사라도 들여다본 것일까?
소설 [빙점]은 일본의 한 신문사 연재에서 시작하였다. 아사히신문에 연재되며 논쟁이 이어질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자들로 하여금 고통스럽지만 멈출 수 없다는 평가에 힘입어 1964년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창간 10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 1등에 당선되며 무명작가였던 미우라 아야코를 단숨에 전국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그 후 이 책은 여러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이었던 1970~80년대에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소설이라는 경계를 넘어, ‘사랑과 용서는 가능한가’를 묻는 윤리·신앙적 고전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소설 <빙점>은 능력 있고 엘리트적인 의사 집안의 게이조와 예쁜 아내 나쓰에의 가정에서 출발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죄책감과 억압, 그리고 무의식의 파괴력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왜 인간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선택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으로 읽을 때 더 선명한 의미를 드러낸다. 특히 무의식, 억압, 방어기제라는 개념은 <빙점> 속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무의식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 게이조가 딸을 잃은 후, 가해자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겉으로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복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합리적 판단이라기보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과 분노가 억압된 채 뒤틀린 형태로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아내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직접 표출하지 못하고, 요코라는 존재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복수를 수행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전치’와 ‘억압’이 동시에 작동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년 5월 6일~1939년 9월 23일)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억압과 전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에서 나온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 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억압 (repression)은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감정·욕망을 무의식 속으로 눌러 숨기는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든 상황 속에서 억압을 선택해야 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그 억압은 무의식 안에서 고개를 들어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상사에게 분노가 있지만 화내면 안 된다고 느껴서 그 분노를 의식에서 밀어내기도 한다. 혹은 어릴 적 트라우마를 기억 못 하는 경우도 무의식에 억압되는 것이다. 이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꿈, 말실수, 신경증 증상으로 우회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잠재되어 있다가 불현듯 나오기도 한다.
전치 (displacement)는 원래 대상에게 향한 감정을 덜 위험한 다른 대상으로 옮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느낀 분노를 친구나 물건에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 혹은 누군가에게 느낀 공격성을 운동, 게임, 일에 과도하게 쏟기도 한다. 감정의 방향만 바뀌고 강도는 유지되거나 더 커질 수도 있는 이것을 ‘전치’라고 하는 것이다. 억압은 인간의 기본 메커니즘이요 전치는 억압된 감정이 밖으로 나오는 한 방식인 것이다.
나쓰에의 태도 역시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할 때 더 쓸쓸하다. 그녀는 입양한 딸인 요코에게 차갑고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단순한 악의라기보다 자신이 저지른 선택에 대한 죄책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의 결과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 중 ‘부정’과 ‘투사’가 나쓰에의 행동에서 두드러진다. 나쓰에는 요코를 냉정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 불편한 감정을 요코에게 전가한다. 그 결과 요코는 이유도 모른 채 부모의 억압된 감정과 죄를 대신 떠안는 존재가 된다.
요코는 <빙점>에서 정신분석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요코는 가족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며, 어른들의 억압된 욕망과 죄의식이 집중된 대상이다. 그녀의 고통은 개인적 트라우마가 아니고 타인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상처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 그것이 책장을 끝까지 넘기는 힘이었다.
소설의 제목인 ‘빙점’은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인간 정신의 냉각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이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 즉 죄책감과 억압이 더 이상 의식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무의식 깊은 곳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지점을 상징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진실을 직면하지 못한 채 감정을 얼려 버리고 그 결과, 관계는 파괴되고 고통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프로이트가 강조했듯,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왜곡된 형태로 되돌아온다.
결국 <빙점>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무의식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게이조와 나쓰에는 죄책감을 직면하지 못했고, 그 결과 요코라는 무고한 존재가 상처 입었다. 인간이 감정을 억압하고 외면할수록, 그 대가는 더 잔혹한 방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통해 <빙점>을 읽으며 인간의 비극이 거대한 악의에서 비롯되기보다, 인정되지 않은 죄책감과 무의식의 침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마음을 기록해 본다. 언젠가 나의 무의식을 만난다면, 아니 무의식을 자각한다면 나는 그 무의식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럴 용기가 내게 있을까? 그때는 꼭 용기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