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화자인 진희는 초등 5학년이다. 아직 산타를 믿는 동심에서 사는 필자의 딸과 동갑인 진희의 시점. 그 시점을 따라 단 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헉! 이걸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안다고? ‘대체 이 아이는 세상을 어떤 렌즈로 보는 걸까’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리고 안타까움을 누르는 응원의 마음으로 동심이어야 할 진희의 시점을 따라가 보았다.
<새의 선물>은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성장 서사가 기대하는 희망이나 화해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세계의 불합리함과 폭력성을 조기에 인식해 버린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일상의 구조를 낯설게 드러낸다. 마치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착각으로 소설 속 권력을 훔쳐보게 된다. 특히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제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미시적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푸코의 관점을 진희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았다.
폴미셸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년 10월 15일 ~ 1984년 6월 25일)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단순히 억압하거나 강제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권력은 규범을 만들고, 말과 행동의 범위를 정하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감시하도록 만든다. 즉 권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일상 속에 스며들어 개인의 사고와 태도를 형성한다. <새의 선물> 속 세계 역시 이러한 미시 권력으로 가득 차 있다. 어른과 아이, 남성과 여성,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은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보이지만, 실은 특정한 권력관계가 고정된 결과임을 소설은 끊임없이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자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의 작동 방식을 예민하게 감지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의 대상,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지만, 그 규정 자체가 아이의 말과 감정을 무시하는 권력이 된다. 작은 사회 안에서 무시받아 살아남기 위해 생존 방식을 찾아가며 권력에 젖어들듯이. 주인공은 어른들의 말속에 숨겨진 위선과 폭력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 인식은 저항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냉소와 거리 두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푸코가 말한 권력의 특징, 즉 권력이 반드시 저항을 통해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순응과 내면화를 통해 지속된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특히 소설 속 학교와 가정은 푸코가 분석한 규율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행동과 사고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정되고, 가정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과 욕망이 통제된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노골적인 형태보다는 훈계, 충고, 걱정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나타난다. 주인공은 이러한 언어들이 사실은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임을 본능적으로 느끼지만, 그 권력에서 벗어날 방법은 알지 못한다. 결국 진희는 세계를 바꾸기보다는 세계를 관찰하는 위치에 머문다.
푸코의 관점에서 볼 때, 주인공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항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새의 선물>에서 그 저항은 행동이 아니라 시선의 형태로 나타난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구분하는 아이의 시선. 아이는 침묵하지만, 침묵 속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분해한다. 이는 겉보기에는 무력해 보이지만, 권력이 자신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위장하는 데 실패하게 만드는 균열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소설은 권력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보여준다. 주인공은 주변의 규범과 기대 속에서 아이답지 않은 아이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고난 성숙함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하고 감정을 절제하도록 요구받은 결과이다. 권력에 의해 심리적으로 억압된 것이며 동시에 그 권력을 내면화하며 하나의 주체로 형성되는 것이다.
진희는 이모의 사랑 이야기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모의 주변을 통해 본 권력의 다양성을 진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했을까? 자녀를 둔 엄마라면 주변 환경에 대한 양육 및 교육의 절실함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있는 지금의 환경 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자연스럽게 젖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푸코는 사랑과 권력은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권력은 악의로 행사되지 않아도 작동한다. 부모는 대개 사랑해서 보호하려고 혹은 잘 키우려고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권력은 더 깊이 스며든다. 아이는 저항도, 의심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권력은 가장 부드럽고, 가장 내면화되기 쉬운 권력이다.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가족 간의 권력이 말이 되느냐고. 그러나 가족 내 권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권력을 통과하는 통로인 것이다.
결국 <새의 선물>은 성장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 소설에서 성장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일상은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촘촘히 엮여 있다. 푸코의 권력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주인공의 냉소를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가장 초기의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설 속 진희가 묻는듯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일상과 규범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너무 익숙해져 보이지 않게 된 권력의 내면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