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은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엔 좀 벽돌책이다. 왜 베스트셀러일까? 이 벽돌책을 전시용으로 쓰는 건 아닐까? 더구나 이 책은 중고생들 필독서에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과학의 문외한이어도 중고생만도 못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필자는 과학 입문 책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생물학자이자 옥스퍼드대학교의 명예교수이신 리처드 도킨스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과학을 이해하는 줄기 아니 씨앗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놀라웠다. 분명 과학책을 읽었는데 문학이 이해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이 문장은 책 본문의 첫 문장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 문장은 단숨에 책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놓았다. ‘과연 나는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의 시작과 함께 저자는 ‘인간은 자유로운 주인공인가, 유전자의 매개체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듯하다. 책에 따르면 자기 복제자는 약 40억 년에 걸쳐 생존 기술을 점점 개량해 왔으며, 인간과 같은 복잡한 생명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 그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집단으로 우리 몸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든 존재들이다. 지금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는 그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기계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생존기계일까? 수많은 문학 속 인물들의 서사가 스쳐갔다. 문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선택, 갈등, 사랑, 희생을 자유의지와 도덕의 문제로 다뤄왔다. 이 문학의 자유로운 소재들에 이 책은 다른 관점을 시사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을 자율적인 주체라기보다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설계된 존재로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문학 속 인물들의 숭고한 선택이나 비극적 희생 역시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문학에서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는 이타적 희생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도 장발장은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 기존의 문학적 해석에서는 이를 인간의 도덕적 각성이나 숭고한 인류애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이타성은 실제로는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상호 이타성의 논리를 적용하면, 장발장의 선행 역시 사회적 신뢰와 협력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정, 장발장의 선행은 본능으로 연결된 생존 전략인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가 장발장에게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이타적 행동이 인간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진화해 온 전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복적인 진화.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저자는 말한다.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사를 바라볼 때 가장 필요한 관점이 아닐까 싶다.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사랑을 다룬 문학에서도 강하게 작용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위해 죽음까지 감수하는 러브스토리를 그린다. 문학적 해석에서는 이를 운명적 사랑이나 개인의 열정으로 설명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사랑과 성적 끌림 자체를 유전자의 번식 전략으로 본다.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순수한 감정의 결과라기보다, 생물학적으로 설계된 감정 체계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폭주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이 해석은 다소 냉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 감정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그 감정 구조가 문화 이전에 이미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학은 유전자에 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유전자에 기인한 사고는 문학을 더 허무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인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고민일 것이다.
이처럼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출발점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문학은 그 출발점을 넘어가려는 시도들이 쌓인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필요한 것이며 우리의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전자가 몸을 통해 살아남듯, 이야기는 인간을 통해 살아남는다. 문학은 유전자의 언어가 아니라, 유전자를 의심하는 인간의 언어인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을 더 차갑게 바라보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성숙’을 갈망하는 지성인의 필독서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문학을 새롭게 읽게 하는 렌즈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인용해 본다. 유전자가 이기적이지만, 인간은 그 유전자의 명령에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반항을 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