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의 상황들을 그려보며..
유지한다. 가는 것을.
유지한다. 진행하는 것을.
그래도 유지한다. 내가 나아가야만 함을.
그럼에도 유지한다. 계속할 수밖에 없음을.
‘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지 않을 거야
난 짧고 빛나게 살 거야’
어릴 적,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수 백번쯤 되뇌었었다.
지금은..
‘인생은 가늘고 길~~~ 게!’라고
떠들고 다닌다.
마치 긴~인생 전도사가 된 마냥.
40살.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난 항상 정답이 뭘까를 고민하고 살았다.
항상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일까를 고민했더랬다.
내 전공이 나에게 맞는 것일까 바꿔야 할까
지금 이 남자가 내 짝일까 아닐까
내일 모임을 나갈까 아니면 취소할까
싫다는 내 뜻을 말할까 하지 말까
지하철 타고 갈까 버스를 타고 갈까
저녁을 사 먹을까 있는 거 대충 먹을까
내일 원피스를 입을까 편하게 바지 입을까
이런 수없이 많은 고민들을 하며
매번 선택을 하면서도 어떤 게 더 나은 정답인지를
고민했었다.
과연 나의 선택들이 정답이었을까?
나비효과라고 했던가..
나의 온전하지 않았던 20대 마지막 시절쯤..
대전과 경기지역의 4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다.
뛰어난 실력과 학력을 갖춘 것이 아니었는데
감사하게도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는 시절이 있었었다. 그 시절만 해도 시간강사를 공개 채용하는 방식이 소수에 불과했다. 전임교수님들의 재량이었던 시절이라 각 교수님들은 학연 지연을 통해 강의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었다.
학과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나보다 나이가 10살, 아니면 그 훨씬 이상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일찍 갔던 나는 나이 많은 여교수님들 쪽에 같이 앉아 있었다.
한 교수님께서 물어보셨다. “우리 임교수님은 어느 교수님 통해서 이 학교에 들어오신 거예요? “라고 물으셨다.
”네? 저는 하이브레인에 채용공고 보고요. “라고 대답했는데.. 다들 나를 쳐다봤더랬다. 그리고 아주 잠시 후 옆에 또 다른 여교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아이고~ 우리 이사장님이 젊고 예쁜 사람 좋아하잖아요. “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웃어댔다.
나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같이 웃었었다.
‘하하하하’ ‘깔깔깔깔’…
며칠 후 타학교에 있는 선배언니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네가 이사장 세컨드로 소문이 난 거 같다고..’
순간 그 자리에서 웃었던 내가 기억났다.
올라오는 건 화가 아니었다. 소~오~름 이었다.
그 자리에서 웃었던 나를!
나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 모욕감..
비아냥에 웃음거리가 되었던 나를!
그때의 내가 견딜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아니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학교. 바로 때려치웠다!
살다 보면 더한 경우도 있다는 선배의 말은
그 당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의 내 선택이 잘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학교는 아니지만 난 내 길을 계속 갔고,
현재까지 내가 이 길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삶도 흐른다는 것 같다.
시간이 멈출 수 없듯
나도 고여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계속 가라~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을~ 내 맘대로~
그래도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