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도에 갔던 사이판을 23년 만에 다시 갔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역시~ 미쿡!이라고 했던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23년 전과 똑같은 사이판 공항이 안 변한 건지..
사이판! 네가 안 변한 거니? 내가 변한 거니?
공항에 내리자마자
23년 전의 내 생각들이 기억났다.
그때 사이판을 바라보았던 내 시선들이..
[2024.6월 첫째 주.
친정아빠 팔순을 맞이하여
삼 형제 모두 아이 둘씩 데리고 14명 전체
가족여행을 갔다. ]
사이판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만일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사이판을 차지했더라면..
아마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가족여행이라
가이드가 진행하는 북부투어를 했다.
사이판은 제주도의 1/10이 안 되는 작은 섬으로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최후사령부가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몸을 던졌다는 자살 절벽 위에서
잉크를 풀어놓은듯한 바다를 보며
그 위에서 죽음을 받아들였던 그들의 마음을
잠깐 느껴보고자 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23년 전에 내가 변했듯.. 대한민국도 변했는데..
변해도 너~무 변했는데..
왜 사이판은 그대로 일까 무척 궁금했다.
운이 좋게도 북부투어에서 21년째 사이판에 사는
가이드님을 만나게 되었다.
23년 전 20대 초반에 느꼈던 사이판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 어떤 제조업체, 즉 공장이 하나도 없는 사이판..
모든 걸 물 건너 들여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가이드님의 얘기로는
원주민들이 독립을 원했었지만
미국은 독립해 줄 생각이 당연히 없다고
그래서 돈으로 때우고 있는 중이라고!
아이를 낳으면 한 명당 돈을 지원해 주고
또 낳으면 또 지원..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으면 또 지원..
원주민 중 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따듯하다 못해 더운 나라에서 느긋함은
기후가 내린 선물 같은 것일 테고..
주는 대로 쓰고 먹고 하다 보니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는데
난 그 더위에 소름이 돋았다.
아~~~~~~~~~ 이거였구나!!!!!!!!!!!!!!!!!
무기력을 익숙하게 하여 사람의 사고를!
생각을! 잠들게 하고 있는 거였구나.
사람의 정신을 놓게 하는 무기력함.
이거 살인과 다를 바가 없구나.
서서히 정신을 잃게 만드는 무서운 방법이구나.
그래~ 맞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몽사상이 일어나기 전,
귀족들이 양반들이 반대했었다.
평민이 서민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을..
정확히 책 읽는 것을!
사람을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신을 붙잡고 안주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사람을 살리는 육아를 하고 있다.
엄마는 커피 마시며 책을 보는 동안
아이들 책상정리를 시키고
방 청소를 시키고 있다.
숙제해야 한다는 딸에게 청소한 다음 숙제라며..
“사랑하는 딸! 네가 어지른 거니까
네가 직접 분류해서.. 치워!
버릴 것, 장난감 함에 담을 것, 책꽂이에 꽂을 것 등..
분류한 다음에 치워야 빨리 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아마도 한 시간을 걸리겠지? ㅋㅋㅋ
훌륭한 사람은 못 되더라도
엄마의 자존감은 물려받을 수 있겠지? 하며..
난 ‘내 방식대로의 육아’를 하고 있다.
나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