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하지 못 하고 싶습니다

관계 제1편

by 동글


예민한 것은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안’ 하는 것일까. 흔히 ‘예민하지 않다.’라거나 ‘예민하지 못하다.’라는 말을 모두 쓴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에 더 가깝다. 예민하지 않다는 것과 못한 것은 그 사람이 그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예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물론 예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택권은 없다. 예민하지 않은 것을 보통 둔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둔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잘 반응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스스로 돌아보면 나는 아마 예민한 사람에 가까운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변화에 조금 더 주의를 가지게 되고 그 변화를 잘 알아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것이 내 단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민하다는 것을 말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섬세하다는 것과도 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다른 사람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니 그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 섬세하게 반응해줄 수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소한 응원의 메시지도 더 크게 받아들여진다. 그때 그 사람의 기분을 잘 알아차릴 수 있는 예민함이 그 사람에게는 섬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게 주어진 관계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장점인 줄로만 알았던 그 예민함이, 반드시 장점이 아니라 단점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어떤 느낌을 받았을 때 그것을 잡아내 다시 바로 맞추는 것이 옳다고만 믿었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라고 인식한 순간부터 문제이고, 병은 병이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병이 된다는 말을 내가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 이 점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의 관계가 평소와 달라서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다시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반드시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혹은 상대방은 그저 숨기고 넘어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의 이런 것들이 반드시 장점으로만 비추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상대방이 숨기고 싶었을지라도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나로서도 그것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저 예민하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 괴롭다. 예민하고 섬세하게 누군가의 힘듦과 변화를 알아차리고 그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고, 좋게 해주고도 싶지만, 차라리 어느 순간에는 둔한 모습으로 그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한채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하게 흘려보내고 싶은 순간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끔 나는 예민하고 싶기도, 예민하지 못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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