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지 않는 연습

관계 제2편

by 동글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의 장점이 단점이 되어버린 순간, 나의 예민함이 미워진 순간, 나는 계속 생각을 이어오고 있다. 예민하다는 것은 보통 둔한 것과 상대적인 개념이다. 둔하다는 것은 무디다는 것이고, 무디다는 것을 감정으로 빗대어 보면 반응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직선적으로만 사고를 이어오니 예민하지 않다는 것은 반응하지 않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도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한 가지로만 생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알지만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모르기에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말이 되고, 또 어떻게 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지금 이 사고의 직선에서는 꽤 그럴듯하게 생각이 됐다.


내가 이 사고에 흥미가 생긴 것은 예민하다는 것은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에 약간의 실마리를 던져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민한 사람이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는 생각이 들지만, 반응하던 사람이 반응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예민함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모르는 척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사실 여러 부분에서 예민하므로 그것을 쉽게 무딘 것처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오히려 예민한 만큼 그것을 섬세하게 모르는 것으로 포장할 수도 있는 것으로도 생각이 되었다.


과연 어떤 부분에서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약간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 좋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정을 감추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의 부분에서는 어렵다고 느낀다. 내가 과거에 썼던 에세이 중 감정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는 것이라는 것의 의견을 다시 피력해보면 힘들고 슬픈 부분에서도 감정을 어느 정도 숨길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내가 스스로 지쳐 그것을 더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연습한다는 것에 끝없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내 선에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반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과연 그 끝은 무엇이 될까. 또 하나의 물음을 남긴 채로 나는 우선 반응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예민하다는 것에도 선택권이 부여될 수 있기 위해서 하는 노력 일부로, 혹은 반응하지 않는다는 그 자체에 대한 노력의 일부로, 무언가에 반응하는 나를 바라보지 않기를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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