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핀 꽃은 있지만, 피지 않은 꽃은 없어

by 동글


쌀쌀한 날씨와 짧아진 밤이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완연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벌써 밖에는 단풍 든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고 거리 위를 색칠하고 있다. 담장 옆을 지키던 꽃들도 기운 내 만연하게 피웠던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는 조금씩 붙잡았던 손을 놓고 다시 돌아가고 있다. 꽃이 지는 것과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은 그저 스치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직 조금 더 보고 싶은데 금방이나 나를 떠나버리는 것 같았다.


봄과 여름을 지나 담장 옆을 지키던 꽃나무에 하나둘씩 봉우리가 피어나올 때의 설렘이 눈에 아른거리던 것이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이제는 모두 피고, 조금씩 질 준비를 하는 것이 마치 애써 서랍에 간직해둔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리는 것만큼이나 슬프게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들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어쩌면 그것이 슬픔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 아끼던 네가 추위에 벗어나서 작은 봉우리부터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떠올리니 그것은 대견하기도 했으며, 폭-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너를 아꼈던 것은 네가 아름다워서 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렇게 애쓰는 모습이 가여워서, 아니, 어쩌면 고마워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보면 내가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너도 힘을 내어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며, 언젠가 나라는 꽃이 내 세상에서 아름드리 피어날 모습이 벌써 기다려져서 그랬다. 그리고 꼭 피워낼 수 있기를 기도했기에 그랬다. 내가 지켜보던 네가, 그리고 너의 친구들이 모두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꽃을 피워낸 것을 보았다. 어쩌면 나도 세상에 있는 많은 작은 봉우리 중에 하나로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 스스로 힘이 들고 지쳐 쓰러질 때, 과연 내가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때마다 너를 떠올리려 한다. 조금 늦게 꽃을 피워낼 수는 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예쁜 꽃을 피워낼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