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따며

속달동 이야기

by 지현옥


감만큼 가을 감성에 젖게 하고 그리움을 부르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 있다는 건 마치 고향을 품고 사는 거 같다. 석양에 물든 노을빛 감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는 진한 고향의 추억에 물들게 한다.

속달 마을에도 이집 저집 담장 너머로 감이 익어간다.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유안진 시인의 시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내 마당에도 늙은 대봉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가을비에 툭툭 떨어져 뒹구는 감들을 보며 올해 감 수확은 물 건너 갔구나 했는데 감잎 사이로 군데군데 고운 빛이 드러났다.

밤마다 비처럼 내리던 이슬이 서리로 바뀐다는 상강이 지나자 감빛은 더욱 짙어졌다. 절기에 맞춰 맛도 달아진다.


맑고 하늘이 예쁜 날, 한 길 높아진 푸른 하늘을 이고 곱게 물든 대봉감을 땄다.

감 따는 날은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게 된다. 감나무 위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옆에 서있는 벚나무엔 후 불면 날아갈 듯한 새털구름이 몽실몽실 걸려있다.

잘 익은 꼭대기 감들은 까치가 먼저 먹고, 지나는 사람들도 탐을 내서, 몇 개 남지 않은 것들이 내 차지가 되었다.


​다른 과일보다 감 따는 일은 쉽지 않다. 나무가 높기도 하거니와, 꼭지가 무르고 시원찮은 것들은 이미 떨어져 나갔고 지금까지 붙어있는 것들은 그만큼 튼실해서 웬만한 흔들림에는 끄떡하지 않는다.

높이 있는 것들은 장대로 비틀어 따고 땅에 떨어지지 않게 잠자리채처럼 생긴 망태기에 들여야 한다. 고개가 아프지만 수확의 기쁨에 즐겁고 신이 났다.


오지항아리 뚜껑에 담아 구절초와 함께 정자에 놓으니 정물화가 되었다. 어쩜 이리도 고운 색을 품을 수 있을까. 초록 속에 진한 주황 물감을 감추고 있던 걸까. 늙은 몸뚱이로 어찌 이리 예쁜 열매를 키워냈는지. 햇살에 한층 맑고 선명해진 감빛이 감동이다.



감을 딴다는 건 가을이 깊었다는 것이고 가을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 일을 다하고 한결 가벼워진 감나무는 감잎마저 하나씩 떨구고 동안거에 들것이다.


수고한 감나무 덕에 나의 겨울은 발갛게 익은 홍시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 맛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올해도 감나무 한 그루가 주는 기쁨을 흠뻑 누렸다. 아기 주먹처럼 살짝 오므린 새순이 날 때부터, 감꽃이 피고, 초록 감들이 열리고, 감 따는 즐거움에, 가을의 낭만까지.


​넉넉하고 풍요로운 계절!

고향마을도 감 따는 소란으로 떠들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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