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기일에

by 지현옥


시댁 6남매가 모였다.

아버님 기일이라 메모리얼 파크에서 만났다. 자식들과 소풍 삼아 만나려고 특별히 날을 잡았던 건지 두 분 기일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때다. 어머님은 싱그러운 초록과 빨간 장미가 만발한 6월 초, 아버님은 만산홍엽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10월을 택해 가셨다.


덕분에 6남매는 봄, 가을로 얼굴을 본다. 3남 3여중 남편이 막내라 다들 성근 머리에 무서리가 내렸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건강해서 내외 합치면 12명이 모인다. 생전의 당신들보다 더 늙은 자식들을 알아보시는지 화창한 날씨로 맞아 주셨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려있는 공원묘지는 묘소마다 추모객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다르다. 봉분에 흙이 보이고 떼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자리는 여전히 슬픔이 떠나지 못하고 침울한 기운이 돈다. 사람들 표정엔 애달픔이 잔뜩 덮여있다.


​반면, 시간이 흘러 슬픔이 아물고 기억조차 아득해지면 지명대로 그곳은 고인을 추억하는 메모리얼 파크다. 간편 텐트를 치고 가족끼리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 표정이 여느 공원에서 마주하는 장면들과 다르지 않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모호하게 보인다.


​추도예배를 드렸다.

아버님 마지막 가는 길에 가족들이 다 함께 불렀다는 찬송과 어머님께서 생전에 즐겨 부르셨다는 찬송가를 불렀다. 아버님은 뵌 적이 없고 어머님도 함께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더구나 남편과 나는 교회에 나가지도 않기 때문에 그저 입만 벙긋대지만 이젠 세월에 젖어 풍월을 읊는 수준은 되었다.


​나이 들어도 부모님 집이 편한지 묘역을 떠나지 못하고 두런두런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님이 살아낸 삶의 방식, 특히 어려서 함께 둘러앉아 먹었던 밥상에 대한 기억이 가장 생생한지 그리운 반찬들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대 멸치를 까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쪄낸 멸치찜이 제일 먼저 등장했다. 가마솥 밥이 끓어오르면 뜸 들일 때 밥 위에 얹어 한 김 쪄낸 멸치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갓 지은 가마솥 쌀밥과 완벽한 궁합이라 멸치찜 하나로도 행복했다고. 하도 들어서 나도 이젠 나름대로 흉내를 낸다. 먹어보지 못한 어머님의 손맛이지만 내가 만드는 멸치찜도 제법 그 맛이 난다고 남편이 좋아한다.


​가을에 농사지은 다꽝 무로 항아리에 쌀겨를 넣어 켜켜이 담은 단무지는 얼마나 꼬들꼬들했던지 어디 가서도 구할 수 없는 맛이라고도 했다. 그 그리운 입맛을 위해 나는 가끔씩 수입 상점에서 일본 단무지를 사다 주지만 꼬들하고 아작거리는 식감은 비교불가인 모양이다.


​들깨를 돌확에 거칠게 갈아 넣고 버무린 겉절이의 맛은 예술이었다고 또 다들 찬사를 보냈지만, 고춧가루를 아끼느라 희끄무레한 김치가 남편은 싫었다고도 했다. 친구들의 도시락에 든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김치와 비교되어 꺼내기 싫었다고.


​타지에서 교편을 잡은 큰형이 오면 주려고 장독대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아 둔 홍시를 몰래 하나씩 빼먹던 맛은 황홀 그 자체였다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올라왔던 청국장은 또 얼마나 진하고 구수했던지. 맏형님은 그 기억을 더듬어 청국장을 손수 띄웠다고 봉지 봉지 각 집에 나눠주셨다. 청국장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자식들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작고 소소한 것들이다. 따뜻한 밥 한 끼의 행복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먹는 끼니에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다 담긴다.


​내 자식들은 나의 무엇을 가장 기억할까. 시대가 변했다 해도 먹고사는 일이 중하기는 마찬가지다. 각자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은 한 밥상에서 맛난 것들을 먹으며 고단함을 쉬어가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청명한 가을날, 어머님이 차려내신 밥상에서 시장기가 느껴지고서야 근처 음식점으로 갔다. 오리백숙과 막국수를 먹으며 아직은 12명 한 다스로 꽉 채워진 상에서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오래오래 이런 날들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