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봄이 된다는 건

by 지현옥


겨울이 아무리 빗장을 단단히 걸어도, 절기는 그 틈 사이로 볕뉘를 들이고 기어이 봄을 몰고 온다.

얼어붙었던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자 햇살의 양과 무게가 확연히 달라졌다. ​속달동 마당에도 봄 햇살이 가득했다.


어깨 위에 내려앉은 한낮의 햇살이 솜이불처럼 제법 따뜻하고, 가지 끝에 닿은 햇살에 꽃눈 부푸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겨울이 얼마나 깊었든 간에, 결국 태양의 각도는 바뀌고 햇살은 다시 나무를 간지럽히고 땅속에 잠든 씨앗들을 깨우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산수유 가지마다 꽃눈이 부풀고, 매화나무 가지엔 연두와 분홍빛이 살짝 드러났다.

솔가지의 채도도 변하고 있다.

여린 목련나무엔 복스러운 은빛 버들강아지 같은 꽃눈이 총총하다. 아직은 작은 꽃눈이지만, 그 안엔 이미 가장 찬란한 봄이 숨 쉬고 있다.



​나무 끝에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땅속의 아우성에 얼었던 흙들이 포슬포슬 부풀어 오르고 있다.


부푸는 건 내 마음도 함께였다.

두터운 점퍼를 벗고 하루 종일 마당을 돌며 봄 마중을 했다.


​매화나무 전지를 하고, 배롱나무에 입혔던 짚 옷을 벗기고, 국화 마른 가지를 잘라 새싹이 올라오도록 길목을 터주고, 삼색 버드나무는 동그랗게 이발을 해주었다.


동네 어르신이 지나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의 만남에 서로 화기가 돌았다. 차 한 잔을 놓고 그간의 안부가 오갔고 점심때가 훌쩍 지나서야 김치 떡국 한 그릇을 끓여 나누었다.


김치 떡국은 설이 지나고 나면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음식이다.

여전히 그 맛을 못 잊고 밥맛이 없거나 속달동에서 간편하게 먹을 때 종종 해 먹는다.


​마침, 설에 넉넉히 샀던 떡국떡이 있고, 설맞이로 만들었던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도 있어 가져왔는데 반찬도 없이 드리기가 민망했지만 맛있게 드셨다.


​멸치 다시마 육수에 묵은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얄팍하게 썬 두부와 청양 고추, 파, 마늘까지, 마지막에 계란을 하나 풀어 휘리릭 두르고, 김가루를 한 꼬집 올렸다. 얼큰하고 개운하다며 국물까지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혼자 사는 분이라 별 맛이 아니어도 혼밥보다는 나았던지 얼굴에 환한 웃음이 마치 봄꽃처럼 피어올랐다. 그의 적적한 마음에 한 줄기 볕뉘라도 된 걸까? 그 환한 표정에 내 마음이 먼저 봄이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봄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느끼는 것이다. 긴 겨울 끝에 나뭇가지에 닿은 햇살처럼, 우리의 소소하고 작은 다정함이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봄기운을 들일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봄이 된다는 건 결국 자신도 그 온기에 함께 녹아드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과 손길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속에 봄을 꽃피우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린 오늘 김치 떡국 한 그릇으로 서로에게 봄이 되었다.

목련 꽃눈 같은 몽글몽글한 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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