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담그며

by 지현옥


우수와 경칩 사이에 루틴이 하나 생겼다. 해마다 온 정성을 다하여 장을 담는 일이다.

​좀 더 날이 따뜻해지면 장맛이 변하기 쉽고, 너무 일러 추위가 드셀 땐 깊은 맛이 들지 않는다.

적당히 코끝이 싸한 공기와 쨍한 볕이 교차하는 우수와 경칩 사이의 절묘한 온도는 장을 담으라고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다.


예부터 장은 정성이 반, 날씨와 날짜가 반이라고 할 만큼 택일을 중하게 여겼다. 25일은 말의 피가 붉어 부정을 막아준다는 말날이면서, 동시에 악귀가 없는 손 없는 날이 겹치는 아주 귀한 날이었다.


게다가 바람도 멈추고 맑은 기운만이 가득했다. 노란 볕 잔치가 벌어진 고요한 마당에서 세 번째 장을 담았다.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다.

​첫 번째는 멋모르고 부딪혀보고, 두 번째는 부족함을 채우며 익히고,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세 번이라는 무게감이 주는 묘한 힘에 기대어 더욱 정성을 들였다.

첫 번째의 설렘, 두 번째의 조심스러움을 지나 올해는 비로소 우리 집만의 맛을 낼 것만 같았다.




살구나무가 지켜보는 수돗가에서 항아리를 닦고 메주를 씻어 말렸다. 소금을 풀어 계란이 동전 한 닢만큼 물 위에 뜨도록 염도를 맞추었다. 이런 시간은 고단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맑아지는 시간이다.


메주를 차곡차곡 항아리에 넣고 불순물을 골라낸 염수를 부어 숯과 마른 고추를 띄웠다. 베보자기로 아구리를 꼼꼼하게 여몄다. 마당에 가득했던 노란 기운이 항아리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어 깊고 달큰한 장이 익어갈 것만 같다.



여기까지가 내가 하는 일이다. 나머지는 자연과 시간의 영역이다. 바람과 햇살에 맡기고 기다림의 시작이다.


꼭 장만 그러할까.

생명이 있는 것들을 돌보는 일, 특히 사람을 키우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에게 적절한 온기의 사랑을 부어주며, 나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숯과 고추 같은 가르침을 주는 것까지이다.


장이 익기도 전에 자꾸만 뚜껑을 열어보는 손길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성장을 믿지 못하고 매 순간 간섭하는 조급함은 발효를 방해하는 잡균과 같다. 자연이 제 속도로 장을 익히듯 아이에게도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면을 채울 시간적 여백이 필요하다.


머지않아 살구나무엔 꽃송이가 터질 것이고, 꽃잎이 하얗게 장독대 위에 내릴 것이다. 단단한 초록 살구가 노랗게 익어갈 때쯤 항아리 안에는 맑은 염수와는 전혀 다른 진한 빛깔과 향을 품은 장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항아리를 열어 장을 가르고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한 후에도 기다림은 계속된다.

결국, 장을 담근다는 건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맛을 맡기고 기다리는 인내의 미학이다.


한여름의 뙤약볕과 겨울의 칼바람을 옹기 속에서 묵묵히 견뎌낸 장만이 진한 풍미를 낸다. 사람 또한 삶의 계절이 바뀌는 고통을 스스로 통과하며 단단해진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그저 항아리 곁을 지키며, 비가 오면 덮어주고 해가 나면 열어주는 묵묵한 믿음뿐이다.


장이나 사람이나 내 뜻대로 뚝딱 빚어내는 조각이 아니라​ 그 존재가 가진 가능성이 가장 맛있게 익어가도록,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도록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다.


볕이 좋으면 장맛도 좋다.

​이제 항아리는 마당 가득 내려앉은 햇살을 삼키며, 가장 맛있는 맛을 묵묵히 빚어낼 것이다.


노란빛으로 맛든 장이 밥상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며 내 마음에도 햇살이 가득 들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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