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달동 이야기
"오늘은 안되겠지?"
이웃 어르신이 울타리 너머로 마당을 들여다보며 남편에게 말을 붙인다. 잔디를 깎고 있던 남편은 기계음에 잘 듣지 못하고 그냥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분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대야미역 근처 도서관을 간다고 하였다. 언제나처럼 배낭을 메고였다.
무엇이 안되냐는 것인지 나는 안다. 남편을 보자 한 잔 생각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목젖이 움직이는 모양새지만, 풀과 씨름하는 상황이라 인사차 던지는 말이다. 형님 아우 하며 몇 번 술잔을 기울이고부터는 남편을 만날 때마다 반색을 한다.
며칠 전에도 도서관에 다녀온다며 손에는 박스 꾸러미가 들려있었다. 마침 우리는 김장밭을 만들다 간단한 새참을 펼쳐놓고 쉬려는 참이었다. 들어오시라 했더니 괴나리봇짐처럼 묶은 박스를 열어 큰 페트병 맥주와 빨간 뚜껑 소주 한 병을 정자에 꺼내놓았다. 거기엔 콩나물 한 봉지와 조미김, 컵라면 몇 개가 더 들어있었다.
혼술을 하려던 차에 대작할 상대가 생겨 여간 반가울 수가 없다며 안색이 환해지셨다. 새참으로 싸간 과일과 단호박을 놓고 술잔이 오가는 자리가 민망해서, 나는 얼른 근처 식당에 가서 코다리찜을 포장해 왔다.
코다리 한 토막이면 충분하다고 막무가내로 덜어내려는 걸 간신히 말렸다. 절약이 몸에 배고 음식 남기는 걸 제일로 싫어한다고 하셨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이 다 그렇다지만 이젠 살만한 형편임에도 당신이 유별나다며 웃으셨다. 연세는 있지만 아직 명민함이 보이고 말투도 점잖으시다. 어쩌다 혼자 사는지 모르겠지만 얼추 취기가 돌자 마나님이 나오고 아드님까지 등장했다.
아들이 영국 내노라는 회사에 다닌다고 하였다. 어학연수를 갔다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눌러 앉았단다. 작년에는 한 달간 유럽여행을 시켜주었다는 자랑과 당신이 열 번 하면 마지못해 한번 전화가 올까 말까라는 서운함을 섞어 끝없이 아들 이야기를 이어갔다. 옆에서 일하며 듣는데도 말끝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낮술로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어르신은 정신을 가다듬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셨다. 몇 가지 남아있는 장 보따리 상자를 남편이 들고 뒤따르며 집까지 배웅해 드렸다. 나는 일손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적적함을 도서관에서 달래고, 배낭에 책 한 권을 넣어, 소주 한 병과 함께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는 삶. 이 더위에도 시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새는 밤이 무섭도록 길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낸 구부정한 등짝엔 외로움을 잔뜩 업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내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렸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시골 농촌마을에서 시내로 출퇴근을 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전답을 관리하시고 아버지는 시청에서 일하셨다. 그 당시엔 매일 깔끔한 옷차림으로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꽤나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야심한 시각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돌아오셨다. 사무실에서 뭔 일이라도 있었던 듯, 이제 그만 다닐 때가 되었다는 말을 엄마에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 싶게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셨다. 그날 아침, 내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버지의 어깨엔 천근만근 돌덩이가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돌덩이 중 하나가 나였다는 걸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4남매 뒷바라지에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부까지 거느린 가장이 그냥 한번 부려보는 객기였다는 것을. 그 후로 아버지의 말 없는 출근길 뒷모습엔 어린 눈에도 짠함이 있었다. 아버지는 결국 정년을 채우셨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나도 아버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몇십 년을 보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내며 한창 시절을 보낸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며 평온을 누려야 하는 노년에 외로움을 친구 삼아 홀로 보내는 그분의 날들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분의 어깨엔 작은 새 한 마리 앉은 듯 훨씬 가벼워 보인다. 간밤에 먼바다 건너 아들에게서 전화라도 온 걸까.
문득, 나의 뒷모습이 궁금하다. 우리는 내 뒷모습보다는 타인의 뒷모습을 주로 보며 살아가고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만 나는 잘 모르는 모습. 늘 거울 앞에서 앞모습만 들여다보고 가꾸어왔지 남이 보는 뒷모습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던 길에서 사실 뒷모습까지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뒷모습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 어쩌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하는 말과 행동,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는 작은 배려와 친절, 이런 것들이 나의 뒷모습을 조금이라도 푸근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라도 천천히 주변을 보면서 가자.
정원에 오래된 벚나무 한 그루, 쩍쩍 갈라진 줄기 위로 뻗어난 가지는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벌써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화사한 꽃들이 폭죽처럼 터지던 봄날의 축제는 언제였냐는 듯, 거칠고 쩍 갈라진 줄기 틈새로 휑한 바람이 지난다. 삶이란 다 그런 거라지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