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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n 25. 2024

25화. 두바이의 밤

숙소에 들어온 수다 쓰는 짐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는 두바이였다. 스리카의 꽤 많은 청년들이 한국행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두바이같은 중동행을 선택한 스리랑카인도 많았다. 자주 오다 보니, 매번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 게 번거로웠고, 차라리 집 하나를 렌트하고 오고 가며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지 싶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그 치치 않았다. 스리랑카 자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임차했던 집을 집주인 동의하에 6인실이었던 곳을 12인실로 바꿨다. 2개의 방을 자신이 쓰고 나머지는 재임대를 뒀다. 임대업이 주가 아니었지만 어차피 자신의 니즈와 주어진 자원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이왕이면 최적의 배합을 만들어내는 능수능란한 그였다.


마침 거실 응접실엔 산지가 있었다. 산지는  이곳 두바이에서 소프트엔지니어 전공으로

유학 중인 20대 청년이었다. 수다쓰가 재임대를 결정하고서 들어온 두 번째 임차인이기도 했고, 두바이 출장을 올 때마다 얼굴을 봐왔기에 동네 동생같이 느껴지는 사이다.

"헤이 산지! 어떻게 지냈어?"

"수다쓰 아저씨도 참. 저희가 지난번에  한 달도 안 됐어요.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아, 이제 졸업 논문 준비해야 돼서 그것 때문에 여전히 바쁜 거는 있네요."

"산지 동생, 이제는 수다쓰 형님이라고 불러. 언제까지 아저씨니? 너랑 나이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형이라고 불러야 우리 관계도 더 친해지지 않겠어?"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흠,. 그래도 해볼게요 수다쓰.. 형"

"그렇지. 처음이 힘들지, 계속하다 보면 빨리 정들 거야. 너도 맥주 한잔 할래?  어. 그런데 안주가 없네

어디서 주문해야 되겠는걸?"

"아, 제가 할게요. 배달앱으로 주문하면 10분 만에 올 거예요. 뭐 드시겠어요?"

"음... 너 먹고싶은거 아무거나 시켜. 이 형님이 쏠게"


둘은 맥주 안주가 될만한 게 뭔지 메뉴 선정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리뷰 많고 빨리 올 수 있는 걸로"

수다쓰의 요청사항이었다. 산지는 곧바로 배달앱을 켰다. 옆에서 지켜본 수다쓰가 깜짝 놀랐다.

"어? 이게 라밧인가? 중동 배달앱?"

"오~ 수다쓰 아저씨. 아,,. 아니 형님.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젊은 사람들처럼 배달 좀 시켜보셨나 보죠?"

산지가 수다쓰에게 농을 던지는 것과는 별개로 수다 쓰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여기 라이더들은 어떻게 배달하는지 본 적이 없었네... 아, 그리고 지금처럼 밤시간이 되어야 김대표가 말한 디디박스의 진가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 맥주 한 잔 하고 한번 거리에 나가봐야겠어. 그래야 디디박스의 현장 수요를 정확히 캐치할 수 있을 것 같아'


방금까지 맥주 안주를 뭐 시킬까 고민하던 수다쓰 형은 순식간에 무언가 골똘히 빠져있었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냐. 오늘 전시회에서 인상 깊은 아이템 하나를 봤는데, 그게 잠깐 생각이 나서. 그래 안주 뭐 시켰니?"

"형님이 또 한국사랑이 대단하시잖아요. 맥주엔~ 치킨!"

"요넘, 내 마음에 쏙 든다 아주! 맥주엔 치킨이 아니라 치킨엔 맥주, 그래서 치맥! 순서가 바뀌면 안 되지~"

"에이, 그게 그거죠. 근데 오늘 전시회에선 무엇을 봤는데 갑자기 생각에 빠진 거예요? 또 사업아이템 하나 건지신 거예요? 1년 전 자동차 스캐너처럼 2탄이라고 할 아이템을 봤나요?"

"아, 맞다. 너 이번에 졸업하면 진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스리랑카 돌아갈 거야? 아님 외국에서 일할 거야?"

"고민 중이에요. 형님도 아시디시 피, 우리나라엔 제가 공부한 것들이 크게 쓰일 데가 없잖아요. 페이도 제 기대치에 맞지 않고. 그런데 솔직한 제 마음은, 제가 배운 기술을 고국으로 가지고 가서 무언가를 창업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스리랑카의 사정상 해외유학한 고급인력인 이 청년을 받아주기엔, 나라는 불안정했고 시장은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다. 물론 무주공산이기에 깃발 하나를 꽂겠다는 선구자적인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도 그런 사업가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어느 부모가 그런 자식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산지 그에게도 비슷한 고민이 있는 듯 보였다.

 

"사실, 형님이 오실 때마다 기회가 되면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 있었어요. 오늘이 그날인가 봐요"

"나야 영광이지. 이렇게 훌륭한 청년이 나한테까지 질문다는 건"

"에이. 저야 부모님이 지원해 주니 이런 거고, 형님은 정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거잖아요. 제가 아는 주변인 중에 한국생활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형님처럼 다 풀어내면서 사업화하는 사람은 없어요.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형님이 20대에 한국행을 택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셨어요?"

"음,. 벌써 20년 가까이 돼 가는 옛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지루할 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지루하다니요, 제 입장에선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일걸요. 말씀드렸잖아요. 형님한테 질문할게 많아서 이 시간을 기다려 왔다고요."


산지의 질문은 무척 개인적이었다. 유학을 선택했고 곧 졸업논문을 마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정말 그가 원해서 걸어왔던 길인지, 아니면 잘 사는 집안 형편에 부모 뜻대로 끌려가다시피 이곳에 왔던 것인지 보면, 아마도 후자같았다.  자신에 대해선 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왜 그런 생각을 해야 되는지 제대로 물어본 적 조차 없었다. 부모님이 정해준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었다. 국가부도라는 혼란스러운 나라상황이 부모의 뜻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그려준 대로 사는 게 안전하다고 느꼈던 그.


그랬던 그가 조금씩 내적 갈등이 시작된 건, 두바이에 유학 와서다.

넓은 세상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꿈이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에서 뛰어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부모덕에 여기까지 왔고 이 무대를 경험하게 해 준 부모님께는 항상 고마움을 느꼈다. 다만, 그려준 대로 살아간다는 건 자신의 삶을 내가 아닌 남에게 의탁해 버린, 우스운 상황을 인지하게 됐다. 누구도 아닌 내 삶인데...그때 나타난 사람이 수다쓰 아저씨, 아니 형님이었다.

자신보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기에 공부가 아닌 생계를 위해 한국행을 선택한 그는, 현재 스리랑카 갈레라는 대도시 어느 정도의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다른 한국행을 선택한 스리랑카인들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삶을 영위해 가는 그가 정말 궁금했다.


"띵동, 띵동"


초인종 벨소리였다. 수다쓰 앞 인생질문, 그리고 '' 치킨이라는 뛰어난 안주와 함께 곧  막이 오를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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