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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n 27. 2024

27화. 또 다른 실천가 챠밀라

두바이에서 돌아온 수다쓰. 여느 때처럼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일들을

루틴처럼 체크해나간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아파트, 상가 월세

한국에서 들여온 전자제품 재고 박스 정리

한국식당 식자재 구매와 된장과 고추장 용량 체크,

최근 조금씩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외제차 정비소와 세차장에선 직원들 교육 등

갈수록 일손이 부족해 직원들을 고용은 했지만, 아직까진 일일이 자신의 손이 타야 직성이풀리는 그였다. 오늘은 멀리서 막역한 친구가 찾아온다. 챠밀라.

   

챠밀라는 수다쓰와 수원에서 함께 일하면서 깊은 우정을 쌓았던 몇 안되는 친구 중 한명이다.

한국에 오기전 중학교 국어선생을 했던 그였지만, 적은 급여로는 도저히 부모님과 식구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챠밀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 길 밖에는 없다. 해보자'


서로 사는 곳이 달라 스리랑카에 있었더라면 마주치지 않을 인연이었다. 무수한 만남 속에서 한국의 수원, 그 공장이라는 곳에서 둘은 만나게 된것이다. 스리랑카의 수많은 청년들 속에 챠밀라 역시 한국행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한국어시험 준비를 가열차게 준비했다. 놀라운 건 그의 대학 전공과 국어선생이라는 직업때문인지 어학에 관해선 탁월한 실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까지도 능통했던 그. 그에게 있어서 한국은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 나라 그 자체였다


친구 수다쓰의 경우, 요리, 정비, 무역업 쪽에 관심이 많았다면, 챠밀라는 언어에 관심이 컸다. 그에게 있어 한국식 학원가는 자신의 나라에는 없는 획기적 시스템이었다. 영어에 능통했지만, 실력을 더욱 연마하기 위해 수원 시내 영어학원을 등록하며 다녔고, 한국어 역시 돈을 지불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자 했었다. 한국의 불교 절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준 한국어 학당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쳐줬지만, 챠밀라는 돈을 지불하더라도 제대로 된 시스템하에서 배우고자 했다.

  

언어를 배우는 일도 그에게 중요했지만, 한국식 학원 시스템을 배우려고 했던 이유가 더 컸던 건,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꿈꾸는 학원을 프렌차이즈화 시키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다쓰와 친해지게 된 계기 역시 서로 꿈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면서부터다. 나라가 가난했지만 이들의 꿈마저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겐 한국이 신세계였다. 둘은 한국에서 배운 수많은 지식들을 고국에서 어떻게 펼칠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토론했다. 사업계획서를 써보고 수정하고, 삭제하면서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제 비즈니스화 시키기까지 서로에겐 너무나 소중한 조언자이자 응원군이었다.

   

그런 챠밀라가 수다쓰를 찾아온 건 석달만이다.


"수다쓰! 어떻게 지냈어. 두바이는 잘 다녀왔어?"

"챠밀라! 어서와. 오는데 고생많았지. 잘 다녀왔어. 두바이. 역시나 세상은 우리나라를 빼고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또 한번 체감하고 왔지.  이번에 우리 고향에도 학원하나를 인수하겠다고 했지? 근데 거기 위치가 어디야?"

"응. 너네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야. 대략 150평 정도 되는 공간인데, 캔디에서 열고 있는 2호점만큼 규모가 비슷할 거 같아. 아마도 학원생은 400~5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지않을까 보고 있어. 갈레는 콜롬보, 디 다음으로 한국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나에겐 정말 중요한 3호점이 될거야."

"대단하다. 그새 콜롬보 1호점, 캔디 2호점 그리고 불과 6개월만에 여기 갈레에 3호점을 낸다니, 엄청난 속도인데! 학생수가 얼마나 된다고?"

"콜롬보는 지금 주간, 야간반 동시에 운영중인데, 대략 900명 정도 돼. 아무래도 수도니까 수요가 아주 많아. 캔디는 아까 말한대로 400명 정도 되고, 여기 갈레는 예상컨 대 500명 이상 모집이 가능할 것 같아. 최근에 교육부에서 우리 학원을 실력좋은 학원이라고 지정해줬어. 학생들 모집하는 데 그게 큰 도움이 된거 같아. 아무래도 정부가 믿어주니까 사람들한테 신뢰가 되었나봐."

 

"이야. 멋지다 챠밀라. 결국에는 너의 생각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구나. 우리에게 한국은 정말, 보물섬이야 그렇지."

"수다쓰 기억나니, 우리 떠나기 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날, 너랑 같이 우리 방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약속했었지?"

"기억이 선명하다. 각자 글로 쓰고 서로에게 확인하는 의미로 교환해가며 읽어보고 싸인까지 했지. 마치 계약서 체결하는 것처럼 말야.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유치하긴 했어. 그래도, 우리 둘만의 나름 세러모니 같은거였지. 인생목표 선언 같은."

"맞아. 지금 그때 서로 교환했던 글을 사진으로 찍어서 늘 보고 다닌다. 혹시나 교만해지거나 혹은 길을 잃을까봐, 항상 가슴 속에 명심하고 다. 우리가 우려해야 되는 것도 이야기 했었잖아 기억나?"

"기억나지. 한국에서 돈을 번만큼 우리나라에 오면, 사실 일 안해도 평생을 먹고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실제로 그렇게 벌어놓은 돈 써가면서 사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고."


둘의 이야기는 꿈을 그렸던, 아니 선포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만이 아닌 무엇을 유념해야 될지, 두 사람 모두 항상 경계해야 할 그때의 이야기, 아니 그들을 각성시킨 한 노인과의 저녁자리 다시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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