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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08. 2024

33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

수환은 챠밀라와 미팅을 마치고 곧바로 회사를 나왔다.

예약해둔 회사 근처 삼겹살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둘은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다.  

"대표님, 스리랑카는 지금 많이 힘들죠?"

"매니저님이 알고 있듯이 국가부도 후 나라상태가 쉽게 나아지진 않는군요. 정부가 새롭게 구성되고 물가안정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데도 국민들 대부분이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조금씩은 안정되어가고는 있는데, 그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요. 사람들 마음속에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은 것도 있구요. 그러다보니 정부에게 의지하는 것보단 스스로 살 궁리를 찾아야 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안타까운 상황이군요. 한국으로 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는데요?"

"맞아요. 특히, 경제수도인 콜롬보는 학원 수강 등록 예정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요. 강의실을 비롯해 강좌 증설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나라사정이 챠밀라에겐 도리어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되었다.

어느 새 수환의 단골집인 삼겹살 집에 도착했다.


"아주머니, 항상 주시는 삼겹살 2인분엔 갈매기살 2인분 주세요. 대표님, 술 하실 수 있으시죠?

뭐로 드십니까?"

"처음 몇 잔은 소맥으로 할까요? 요즘은 카스가 아니라 테라에 참이슬이라고 들었는데?"

"대표님은 그냥 한국인이시네요. 너무 자연스러우신데요 하하."


삼겹살은 초벌이 된 상태로 나왔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르바이트생 하나가 삼겹살이 익을때까지 먹기 좋게 구워주고 있었다. 초벌된 삼겹살은 어느새 노릇노릇해지고 각자의 앞접시에 차례대로 놓였다.


"그럼, 저 김수환 스타일대로 한번 말아보겠습니다"


병권을 쥔 수환은 호기롭게 그 만의 소맥 레시피로 참이슬과 테라를 부었다. 수 년간의 직장인 짬밥으로 별도의 재량컵 없이 능숙하게 따르는 그를 챠밀라는 기분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탄력있는 손목 회전으로 회오리 거품을 일으킨 잔을 챠밀라에 건넸다.


"한국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표님. 건배"


부드러운 거품과 소맥의 첫 모금이 챠밀라 목을 타고 내려갔다. 술의 배합이 기가막혔다. 단숨에 전부를 들이겼다.


"캬. 소맥 비율이 아주 끝내줍니다. 매니저님"

"그런가요. 제 손맛입니다 하하. 삼겹살도 어서 드셔보십시요. 이 근방에서 가장 맛있는 삼겹살집입니다"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집어든 삼겹살 한 점을 소금에 살짝 찍고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수환은 '픽'하고 웃음이 났다. 챠밀라는 천상 한국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미팅을 막 끝내고 온 뒤라 소맥 3잔은 게눈 감추듯 빠르게 털어넣었다. 배가 서서히 차오를 듯 시점이 왔을 때쯤,


"이젠 소주로 가시죠"

"좋습니다"

"여기 잎새주 시원하거 한병 주세요"


마치 본격적인 대화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수환의 목소리는 청량했다.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따르는 두 사람은 약간의 취기가 올랐다.

그리고 챠밀라는 그가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 매니저님은 스리랑카 봉사를 어떻게해서 가셨던 거예요?"

"아, 대학교 선배 중에 봉사단체를 만드셨던 분이 계세요. 그 분은 정말 스리랑카를 찐으로 좋아하시는 분인데, 2006년 12월쯤에 쓰나미가 일어났을때 스리랑카 구호활동을 다녀오고서 후배들한테도 비슷한 경험들을 했음 좋겠다고 해서 해외봉사단체를 만들었고, 제가 거길 들어간거죠. 우연찮게 그 선배가 갔던 스리랑카를 또 한번 가게 된거구요. 콜롬보, 캔디도 잠깐 머물렀지만 주로 남쪽에 위치한 마타라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습니다."   

"아, 쓰나미 구호활동을 왔을때면, 벌써 15년이 넘는 일인데, 지금의 국가부도보다 더 힘든 재난상황이었습니다. 그 시절부터 도움을 주었고 매니저님이 또 한번 봉사를 하러 왔다니 스리랑카 사람으로서 참 고마운 일이네요."

"별 말씀을요. 그 선배가 해주던 말이 있었어요. 누군가를 도움준다는 생각보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이 더 크게 배우고 올거다고. 정말 그 말은 맞았어요. 봉사라는 타이틀이긴 했지만, 저를 포함해 함께했던 친구들 모두 하루를 마칠 때마다 피드백을 주고 받았는데 매일 새로운 것을 채우고 느끼는 날들이었죠. 그 선배도 그랬듯이 저도 스리랑카 사람들 덕분에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도리어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 감사했었구요."

"조금 전 사무실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만, 매니저님의 이런 소중한 추억이 어쩌다가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말씀인지 더 듣고 싶네요"

"저도 모르게 미팅 말미에 제 개인적 이야기를 드리게 됐었네요. 대표님이 편했었나 봅니다.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제가 스리랑카를 다녀오고나서 네팔을 다녀왔었거든요. NGO단체 인턴으로 수 개월동안 현지인과 함께 지냈었습니다. 스리랑카 경험을 계기로 제 자신을 더 채우고 싶었거든요."


수환의 네팔이야기는 스리랑카처럼 아름다웠지만,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천천히 지나갔던 그 시절,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묻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그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많은 것을 갖지 않았음에도 늘 감사하고 행복해 했었죠. 처음엔 갖은 게 많지 않은데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거지? 인위적인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스며들었고 무서운 경쟁과 사람들 시선을 피한다는 게 만만치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드는데. 어느 날 평온한 저녁을 보내며 멍을 때리는 데, 그날도 외부 시선을 기준삼아 던졌던 질문이 어느 순간 저를 향해 질문하는 걸 느꼈어요.


나는 왜 밖을 쳐다보며 인생을 평가받으려고 하지?

내 인생인데 까짓거 지금은 나를 더 바라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건데?

나는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은 건데?'


이런 질문들이 마구 생기더군요. 네팔의 환경도 한 몫했던 거 같아요. 고요한 밤하늘을 멍때리다 보고 있자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때는. 다만, 그 답을 찾는 게 어려웠었죠."


챠밀라는 수환의 고백같은 이야기에 수다쓰와 인생계획서를 논하고 세러모니를 하겠다고 2차로 찾아간 치킨집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노인의 묵직한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었다. 자신 역시 돌아갈 고국에서 자신만을 위한 삶에 매몰되어 있었다. 각자도생. 그런 그에게 노인은 스스로에게 삶의 차원을 높이라고 주문했고, 자신 역시 그간 묵혀둔 자신의 야망과 꿈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자신은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가. 자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저희 20대가 그래서 비슷해 보였습니다. 매니저님이 스리랑카와 네팔에서 겪고 난 뒤 느꼈을 스스로만의 시간, 저 역시 한국에서 10년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그 즈음 어느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몇날 몇일을 고민에 휩싸였어요. 어쩌면 우리 둘은 비슷한 상황에 놓였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대표님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은 신거 같은데요. 그렇지 않은가요?"

"어느 정도는요. 지금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도 그때의 질문을 찾던 제 모습에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것만 같아 초심을 찾고 재정비 하고자 선택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정말 나다운 삶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물었던 그때에 비해 지금은 정신없이 펼쳐지는 상황에 급급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답지 않은 선택들이 점점 늘어갔구요. 일단, 멈추고 다시 정비해야 될 것 같아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매니저님은요?"

"대표님처럼 마음 속 대화는 수없이 한 것 같은데, 어느 한 지점에서 포기한 거 같아요. 집요하게 제 답을 찾아내지는 못하고서 지금도 살아가는 것 같구요. 여지껏 방황을 해왔다고 봐야될 것 같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다는 건, 저에게 아직 풀어내지 못한 오랜 숙제처럼 쌓여있어요. 그런 면에선 대표님 모습이 저를 자극하고 있구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집요하게 답변하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답을 찾는 사람들. 제 앞에 계신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곁에서 배우고 느끼고 싶어 자리를 함께 하자고 제안드렸습니다."


수환과 챠밀라는 술잔을 기우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대화의 소재와 깊이는 더욱 진해졌다. 어디에서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진부해했고 그들의 삶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냥 덮어두고 사는 그것들이었다. 둘은 그 시절 자신의 마음과 나눴던 대화,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답을 찾아가다 지쳐서 현실과 타협했던 자신이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 등으로 차츰 밤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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