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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12. 2024

36화. 가장 단단한 땅에 경력의 토대를 쌓는다

모가스터디내 해외사업의 필요성을 주장한 장본인이 김상무였기에 수환의 요청사항은 곧바로 승인이 났다. 제대로 된 해외출장준비에 생각보다  소요됐다. 고용노동부의 사무관 면담, 출입국사무소, 노무법인 등 한국 내  외국인 근로자가 이해관계가 있는 유관 기관 하나하나를 만나고 자료 수집을 하면서 정신없이 뛰었던 한달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수환의 모습을 주변에선 다들 놀라고 있었다.

'띵동' 사내 메신저의 알람이 울렸다.


'김수환! 너 완전히 신났다. 왜이리 바뻐? 얼굴 까먹겠다. 우리 저녁한번 해!"


입사 동기였던 이가은 대리였다. 동갑내기 였던 가은은 수환과는 취준생 시절 면접을 함께 준비한 친구였다. 유일하게 두 사람만 합격하게 된 게 인연이 되어 종종 커피나 식사를 하곤 했었다. 해외사업팀 공모가 날때도 수환에게 공모사실을 제일 먼저 알린 것도 가은이었다. 수환의 스리랑카 봉사나 네팔이야기를 식사때 들었던 것이 생각났던 것도 있었으나, 왠지 회사 적응에 부침을 느끼는 그가 안쓰럽기도 해서였다. 면접때만 해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패기 넘쳤던 그는, 일상적인 회사 일에 금새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수환아, 일이 재미없니?"

"사실, 그게 참 걱정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이 곳이 익숙해 지원했던 회사였는 데, 역시나 나는 정적이고 지시에 따라야 하는 일에는 흥미가 잘 안일어나는 것 같아. 일에 대한 몰입도 떨어지고, 윗분들한테 보여지는 내 평가도 크게 좋아 보이지도 않고. 아...어쩌지 싶다."

"어쩌기는! 힘들게 들어온 곳인데 너 너무 나태한 생각을 먹는 거 아냐? 이제 들어온지 1년 밖에 안됐잖아. 그래도 3년 정도는 해보고서 회사를 평가하고 해야지, 너 이거 안하면 다른거 하기도 쉬운 나이가 아닌 거 몰라?"


가은이의 충고는 진심이었다. 면접때부터 알고 지낸 그녀는 세상에 대한 현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깨우쳐준 똑순이였다. 가끔 술 한잔 하면서 토해낸 수환의 옛 이야기를 무 자르듯 잘라냈던 그녀였다.


'너 언제까지 술안주로 그 이야기만 하고 있을래? 그렇게 좋았다면 거기서 살고 그 나라에서 일을 하지 그랬어?'


현실적인 지적을 했던 가은도 해외공모한다는 소식은 수환이 혹시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반신반의하며 알렸던 사실에 수환의 눈은 반짝였다. '어,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한국어학원 사업진출관련 사람을 뽑는다고?' 수환은 직감적으로 이건 자신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기회가 오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당연할 정도로 그의 변화는 드라마틱했다.


술자리의 술 안주로만 휘적거리다 해외사업팀 대표 매니저 격으로 돌아온 수환의 모습에 가은은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위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수환의 일 처리 솜씨의 뛰어남은 일반 직원으로 살아가는 가은과는 달랐다. 가은만이 아니었다. 해외공모에 전혀 관심없고 시키는 일에 익숙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수환의 변신은 신선했다. 특히 가은이 갖았던 일에 대한 가치관은 동기이자 친구인 수환의 변신에 크게 흔들렸다.


물론 김상무라는 임원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지만 그의 입체적 사고와 해외고객과의 조율은 가은의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던 능력이었다. 수환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곧있을 스리랑카 출장 계획에 정신이 없었다. 가은은  변화된 수환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극적으로 삶이 변화되었는지,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가은아, 잘 지냈어? 내가 정신이없었어. 그래 내일 출국하는 거 준비 거의 했거든. 미안한데 우리 30분 뒤에 볼까? 나 아직 저녁도 안먹었다. 간만에 치맥한잔 하자!'


가은은 먼저 도착해있었다. 잠시 그녀는 수환을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될지 고민했다. 입사 동기인데 너무 앞서가는 그가 부럽긴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마도 수환을 평소 동기 이상으로 감정을 갖고 있어서였을거다. 자신이 호감을 갖았던 수환이 이렇게 잘 풀리는 게 회사 동료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매력이 커지는 일이었다. 그저 술자리에 술안주였던 그때의 이야기가 실제로 눈 앞에서 일어나는 걸 보니, 세상일은 정말 알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띵동"

"어서 오세요"


가게 주인의 환대를 받고 수환이 들어섰다. 한 손엔 서류 뭉치를 들고 있던 수환이 창가 옆 가은을 발견하자 손을 들었다.

"가은아. 잘 있었어? 너 정말 오랜만이다!"

"그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정말 얼굴 잊어버리겠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이 흘러 갔는지는 알어? 주변에서 사람들이 너보고 뭐라고 하는지도 알고?"


가은은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보다는 주변에서 수환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뭐, 잘 모르지. 그냥 내 일에만 빠져 살았으니까."

"너 정말...달라졌어. 정말 많이...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지?"

"가은이 너 덕분이지 뭐. 맨날 술안주로 떠들었던 그 때의 꿈이야기를 가은이 니가 안들어줬음 오늘의 나도 없었을 수도 있어. 하하. 아마도 맨날 너한테 이야기하다보니 그게 주문처럼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건 아니었을까?"


가은은 유쾌하게 웃는 수환의 모습에 예전 기운없이 회사와 자신은 맞지 않다며 했던 그가 진짜 수환이었는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행복해 수환아?"

"어,,. 야 가은아. 너 그 말한디가 완전히 맥주 땡기게 한다. 얼른 주문부터 하자. 여기요 생맥 2잔 먼저 주세요. 후라이드 1마리 주시구요! 일단 목좀 축이자"


"크아~. 우와. 완젼 맛있다. 가은아. 나 진짜 행복해지고 있는 중이야. 내일 오전에 출국하면 아마도 스리랑카에 오후 5시쯤 도착인데, 거기에서 일어날 일 생각하면 벌써 즐거워지는 거 있지. 내가 사랑ㅇ했던 스리랑카에서 내가 만든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줄 아니? 그러니 안 행복할 수가 없지 하하."


수환의 싱글벙글한 모습에 가은은 한편으로 수환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져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는 수환처럼 순수하게 행복하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기 어려웠기에 그의 기분 좋은 웃음은 답답한 도시 속에 청량음료 같이 다가왔다. 가은도 맥주를 잔뜩 머금고 목을 시원하게 넘겼다.

"캬. 진짜 맛있네 오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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