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이끌림 그리고 고백

by 이도권

픽미업 사무실은 콜롬보 수도에서도 가장 중심지에 위치한 샹그릴라 타워 25층에 위치해 있었다.

다랑거가 미리 잡아둔 일정이었기에 입구초입부터 회사측 실무자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요. 부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25층의 절반 정도를 쓰고 있는 픽미업은 한국 판교에서 볼법한 여느 스타트업 사무실처럼 생기가 넘쳐보였다. 칸막이가 없이 오픈오피스처럼 언뜻 봐도 수십명의 개발인력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준은 생각보다 젊고 생기가 넘치는 픽미업의 모습에 조금씩 상기되고 있었다.


'와, 한국의 여느 기업보다 더 활력이 넘치는데! 기대 이상이야!'


복도를 따라 걷다 코너쯤에 멈춰서니 'vice president'라고 문패가 적혀있다. 문은 열려있었다. 관계자는 우리에게 부사장실을 가리키며 안으로 안내했다.


"똑똑, 부사장님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부사장실 안쪽으로 들어선 순간 콜롬보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멋진 뷰를 지닌 코너룸이었다. 콜롬보 시티와 비치를 배경으로 펼쳐진 해변과 도심은 약간의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서 오십시요. 픽미업의 부사장인 라자쓰 니한입니다. 먼 걸음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예. 부사장님. 저희 제안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아시겠지만, 부사장님과 저를 연결시켜준 다랑거입니다. 제 오랜 친구이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랑거씨.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서 아주 반갑습니다. 그간 가운데에서 연결시켜주신 점 고맙습니다. 자.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연구개발부장과 팀장들이 있는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기실까요? 이선생님이 제안해주신 디오박스에 대해서 연구개발부서팀과 제가 미리 좀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시면 더 뜻깊은 미팅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아. 그러셨군요. 좋습니다. 어차피 실질적 미팅이 되기 위해선 그 분들이 동석하는 것이 좋지요. 함께 보시지요."

그렇게 세 사람은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개발부서에선 5명 정도가 자리를 함께 했는데, 도준은 이들의 준비태도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부사장을 만나도 큰 성과인데, 연구개발부서내 주요 실무자들이 함께 미팅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눌려면 실무자들과 소통은 당연히 거쳐야만 했다. 여러 미사여구 없이 직진하는 픽미업의 기업문화가 생각보다 놀라웠지만, 도리어 딜이 성사 될 가능성은 높아보였다. 자리에 앉은 부사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한국에서 오신 이선생님께서 디오박스와 픽미업의 협업 제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보내주신 자료는 우리 연구개발팀에서 먼저 검토를 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페이퍼가 아닌 직접 듣고 싶은 이야기,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걸로 압니다. 허심탄회하게 많은 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생님, 저희 픽미업은 어떻게 알게 되셨고, 한국에서 발명한 디오박스가 픽미업과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먼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부사장의 입에서 도준의 얼굴로 쏠렸다. 도준은 어디서부터 말을 꺼낼 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다 이내 말을 꺼냈다.


"부사장님이 저희측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오늘 자리를 마련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제 소개를 잠깐 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도준은 오기전 자신이 마음먹은대로, '척'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 그 자체로의 소개를 하기로 했다.


"저는 2003년 대학생 시절 여기 콜롬보 옆 니곰보라는 항구도시에서 인턴으로 5개월간 살았습니다. 그렇게 스리랑카와 인연을 맺고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2006년 12월 26일 쓰나미가 일어났고, 제가 사랑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긴급구호활동으로 1개월을 마타라는 지역에서 보냈습니다. 이후, 마타라 루후나 대학과 제가 다닌 대학간의 교류프로그램을 만들어 또 한번 구호활동을 펼쳤던, 조금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도준의 예상치 못한 답변이 먼저 튀어나오자, 부사장을 비롯한 픽미업의 관계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들과 협업하자고 온 비즈니스 맨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뜸 스리랑카와 맺게 된 인연을 이야기 하니, 놀랐던 것이 분명했다. 도준의 갑작스런 스리랑카 인연에 대한 고백은 부사장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답변을 하게 만들었다.


"아...그럼 저희 나라에 도움을 주러 오셨던 분이셨군요. 아 몰라봤습니다. 저희는 그저 비즈니스 미팅에만 집중해 있었지 이선생님이 스리랑카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생각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그 재난속에서 도움을 주신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처음 이곳에서 살았을 때가 20대였는데, 그 시절 제가 깨우치고 얻은게 무척 많았습니다. 오히려 스리랑카는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곳이어서 제가 감사하지요. 그런 곳이 큰 재난으로 아픔을 겪고 있으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어떤 자랑을 하자고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도준은 잠시 숨을 고르다 다시 이어갔다.


"생각해보면, 그저 이끌려서 왔던 거 뿐이지요. 어쩌면, 오늘 이 자리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보단, 제 안에 무엇이 여기까지 이끌리게 만들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디박스와 픽미업간의 협업 가능성을 논하는 중요한 자리에 저의 개인적 감정사를 말씀드리는 게 조금 그렇습니다만,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게 설명이 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


도준의 말에 부사장을 비롯한 연구개발 관계자들 역시 그의 입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 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는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도준이 보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2화. 실론의 바람을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