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25살에 찾았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by 이도권


도준은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김대표와 자신과의 관계도 정확히 말해줘야 했다. 상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부사장님, 처음 인사때 드렸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네요. 그런데 지금이 더 명함건네기에 좋은 타이밍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기업대출을 담당하는 은행원입니다."

"예? 은행원이시라구요?"


부사장을 비롯한 픽미업 관계자들은 또 한번 놀랐다. 디오박스 측 사람인 줄만 알았던 그들에게 은행원이라는 명함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 이선생님은 디오박스와 저희를 왜 소개시키려고 했던 것인가요? 이 선생님은 저희를 자꾸 놀라게 하는데요. 하하하"


"예.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도준은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디오박스를 발명한 김길상 대표님이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기업대출 담당자로서 김대표와 상담을 진행했었습니다. 한국의 배달시장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저는 김대표가 가져온 국내외 수많은 특허권에 대한 가치를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특허권이 디오박스와 관련된 것이었지요. 상담 이후 대출 취급을 위해 배달시장에 대해 공부를 하게됐고 여기 계신 분들 모두가 알다시피 전세계의 배달시장은 엄청나게 큰 시장인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디오박스가 배달시장의 판도를 바꿀만큼의 게임체인저급의 혁신 제품인걸 확신하게 됐고 김대표님이 요청한 공장과 설비 지원을 저희 은행에서 하게 됐습니다."


라자쓰 부사장 역시 이야기내용이 흥미로웠는지 물한모금을 마시며 도준의 다음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수 십년간 사문화된 법이었지만 한국 현행법상 배달통에 옥외광고를 부착하는 것이 불법이란 걸 알게되었고, 디오박스는 날개도 못핀 상황에서 고사하기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최근 한국 정부기관에선 규제샌드박스라는 제도로 디오박스를 선정했고 현재 전국에서 운영할 수 있는 임시허가까지 받아냈습니다. 이후 한국 배달플랫폼 회사와 컨택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 그들 역시 쇠퇴의 길로 들어섰고 자금사정도 만만치 않아 진척은 더딘 상태입니다.


이 와중에 중동 탈라밧으로부터 협업을 해보자는 LOI가 날아왔고, 바레인 정부는 디오박스 운영 허가를 발급해준 상태입니다. 한국과 달리 중동은 배달통 옥외광고를 허용했고 도리어 야간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된다고 판단하고 도입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지요. 하지만 여전히 디오박스 출범이후 성과는 더딘 상태입니다."


디오박스의 현 주소를 도준은 솔직히 말했다. 어쩌면 은행원을 경험했던 관성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게 장미빛 이야기보다 현재 솔직한 상황을 말하는 게 그 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픽미업을 왜 찾아왔는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흠...정말 저는 스리랑카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데요. 동시에 늘 디오박스도 생각하는 사람이구요. 그런데 '왜 디오박스를 스리랑카 회사와 연결할 생각을 여태 안했지?'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자료 서치를 했었습니다. 저는 중동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스리랑카는 제가 살아본 곳이고 애정이 있는 곳이니까 자료 서치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여기 픽미업을 발견하게 된거죠. 저에겐 환희의 순간이었습니다. 디오박스를 연결할 회사가 있다니 말이죠"


라자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회사가 저 멀리 한국에서 찾는 회사였다는 말은 그가 그토록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징표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도준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중동, 아시아 같은 큰 시장에서 궁극적으로는 성공해야 겠지만, 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는 건 부사장님도 잘 아실겁니다. 저는 김대표에게 스리랑카는 작은 시장이나, 통제가능하고 단일시장이라는 강점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더 임팩트한 성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해외 시장을 두드린다면 해볼 만 하지 않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스리랑카에 온다고 했을 때 제가 김대표에겐 픽미업은 이러한 조건을 갖출 가능성이 높은 회사라고 재차 말해두었습니다.


1) 중동. 아시아 시장보다 협소하나 스리랑카라는 통제가능한 단일 시장을 독점하는 회사

2) 가성비 높은 IT인프라 풀이 충분해 디오박스 운영 실증데이타 누적이 가능한 회사

3) 제조와 실증테스트를 임팩트있게 구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세계시장 진출에 열정이 있는 회사


그리고 조금 더 먼 미래에는


4) 전기 오토바이와 디오박스의 합작품이라는 환경산업이라는 신규시장 진출에 열정적인 회사

5) 자동차 생태계처럼, 디자인 - R&D - 제조 - 판매 - A/S 까지 디오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의 새로운 생태계 창출에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

6) 그러한 생태계내에서 디오박스를 기반으로 렌트할부, 보험 등 금융과 광고, 통신(핸드폰 개통을 포함시켜 대규모 통신회사도 동등한 파트너로 만들어 버리는) 사업화에 창의적으로 도전하는 회사..."


도준은 여기까지 말을 이어나가면서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빛을 두루 보았다. 다들 흥미진진하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결론은 이 모든 게 가능하기 위해선 파트너였어요. 결국 누구와 손을 잡느냐였지요. 디오박스가 돈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국내외에서 수 년간 김대표에게 다가온 파트너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배달생태계내에서 상생이 아닌 돈을 앞세운 탐욕으로 디디박스를 바라봤기 때문이죠. 물론 디오박스의 역량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픽미업도 디오박스도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해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픽미업은 스리랑카를 발판으로 해외진출하는 꿈을, 임팩트 있는 파트너를 만나 세계시장의 또 하나의 표준을 만들고 싶은 꿈..."

"예. 저희의 비전을 알고 계신군요. 국내 시장을 넘어선 진출 전략은 저희의 생존전략이기도 합니다."


부사장 역시 솔직간결하게 말했다.


"제가 은행원 신분으로 여기 온것이 아님을 부사장님을 비롯해 여기 계신 분들은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개인적 휴가를 썼구요. 온전히 저 개인의 꿈을 바라보고 온 스리랑카입니다. 제 마음 깊숙한 곳에는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이 25살 이곳 스리랑카에서 찾았던 꿈입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비즈니스를 펼치고 싶다는 꿈. 은행원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는 있지만, 만약... 기회를 잡게 된다면 깊숙히 묵혀둔 제 꿈을 이뤄보고 싶은 마음은 늘 살아있습니다. 눈치 챘겠지만, 수년 전 디오박스가 그런 저의 꿈을 건드렸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부사장은 도준의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가 어떤 비즈니스 내용보다 몹시 인상깊었다.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애잔한 마음도 들어섰다.


비즈니스를 떠나 한 개인으로서, 꿈을 놓치 않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 치는 행동들. 눈 앞의 도준도 그렇고 지금의 자신도 그렇고, 마치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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