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의 동화책에서 나를 본다

by 이도권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큰 딸 연우.

그 아이가 6살 때쯤인가 읽어달라며 가져온 책 하나가 있었다.

함영연 작가님의 '잠자지 마 플람'

여기에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적어본다.


깜깜한 밤, 환한 달이 떴어요

부엉부엉.

수리부엉이 카야와 부루가 조용히 밤하늘을 날아요

밤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지요

카야와 부루는 바위산에 사뿐히 내려앉았어요

그런데 절벽아래 쇠부엉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어요.

"저런, 피를 흘리고 있어!"

카야와 부루는 힘을 합쳐 부엉이를 끌어올렸어요.

다친 부엉이는 많은 아픈가 봐요.

펄펄 열이 나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요.

카야와 부루는 번갈아 가며 부엉이를 보살펴 주었어요.

며칠이 지난 새벽, 부엉이가 깨어났어요.

"우린, 카야와 부루야. 여기는 검은 숲의 바위산이고, 네가 쓰러져있길래

이리로 데려왔어."

"구해줘서 고마워. 나는 플람이야.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총을 쏘았어"

"저런! 큰일 날뻔했구나!"

"얘들아 나 여기서 살아도 돼?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좋아, 우리랑 같이 살자!"

이렇게 부엉이들은 한 식구가 되었어요.


아침이 되자

카야와 부루는 깊은 잠에 빠졌어요.

그런데 자꾸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요.

"플람, 안 자고 뭐 해?"

"응, 운동 중이야."

플람이 펄럭대는 소리에 카야와 부루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밤이 되자 카야와 부루는 사냥에 나섰어요.

"플람, 너도 같이 가자."

플람이 대답하지 않아요.

가만 보니 절벽 틈에서 쿨쿨 자고 있어요.

"플람은 이상해. 왜 밤에 자는 걸까?"

카야와 부루가 사냥에서 돌아오자

플람은 기지개를 켜고 있어요.

"플람, 너는 왜 모든 게 거꾸로야?"

"나는 밤에 자고 낮에 사냥해. 아주 어려서부터 그렇게 살아왔어."

"뭐라고?"

카야와 부루는 깜짝 놀랐어요.


"여기서 살려면 우리랑 똑같이 생활해야 해.
앞으로는 밤에 사냥하고 낮에 자도록 해."

부루가 큰 소리로 말하자 플람이 모깃소리로 대답했어요.

"알았어. 노력할게."

"아침이 되었으니 모두 자자."

카야와 부루가 잠자리에 들었어요.

하지만 플람의 눈은 점점 말똥말똥해졌어요.

"어? 모기들이 친구들을 괴롭히네."

플람은 모기를 쫓다가 그만 카야의 발을 밟고 말았어요.

카야는 버럭 화를 냈어요.

"플람, 어서 자!"

밤이 되자 부엉이들은 사냥을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플람도 함께였죠.

"쥐들은 작은 소리에도 금세 도망쳐. 조용히 다가가야 해!"

부루가 플람에게 속삭였어요.

저 아래 쥐가 보이자 부루는 쏜살같이 아래로 날아갔지요.

그런데 우지끈 쿵쾅!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플람이 나무에 부딪쳤어요.

쥐들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 버렸어요.

"미안해. 졸다가 그만 부딪쳤어."

플람이 머리를 긁적였어요.

"너 때문에 허탕 쳤잖아!"

부루가 화를 냈어요.


"플람, 우리와 똑같이 생활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어."


카야와 부루가 냉정하게 말했어요.


"노력해 봤지만 너무 힘들어. 나는 나대로 살면 안 될까?"


플람의 말에 카야와 부루는 고개를 저었어요.

결국 플람은 바위산을 떠나 맞은편에 있는 갈대밭으로 사라졌어요.

쏘아아.

플람이 떠난 뒤로 밤마다 비가 쏟아졌어요.

카야와 부루는 며칠째 사냥을 나가지 못했어요.

"아, 배고파."

"카야, 낮에는 비가 잠깐씩 그치니까 그때라도 사냥을 나가 보자."

카야와 부루는 낮 사냥에 나섰어요.

하지만 먹이를 구하지 못했죠.

너무 졸려서 날기조차 힘들었거든요.

"플람도 우리처럼 힘들었겠지?"

"그러게. 플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카야와 부루는 배고픔에 지쳐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먹이가 잔뜩 쌓여 있네요.

"어, 이게 뭐야?"

"플람이 두고 갔나 봐."

카야와 부루는 플람이 정말 고마웠어요.

자기네와 다르다고 화를 낸 게 몹시 후회되었지요.

카야와 부루는 서둘러 플람이 있는 갈대밭으로 향했어요.

"플람, 고마워. 네가 먹이를 두고 갔지?"

"응, 너희가 배고플 것 같아서......."

"플람, 우리가 잘못했어. 네가 힘든 건 생각 못하고, 우리 생각만 했어.

다시 우리랑 함께 살자."

"진짜? 와, 정말 기뻐!"

부엉이들은 바위산으로 날아갔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잠자지 마 플람'은 나의 일터를 떠올리게 한다.

회사의 가치관이 자신의 가치관이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참 바쁘다.


회사라는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개인인 나는 조직에 충성을 다하고, 그렇게 바빠짐을 때론 미화하기도 한다. 조직이 바라는 틀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 보니,

시대가 어떤 세상이고 지금의 나는 정말 괜찮은지 물을 새도 없다.

심지어 세상 돌아가는 건 남의 일이고 조직의 부속품으로 바쁘게 살아갈 뿐이니 주변은 잘 안 보인다.

특히, 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에 어떤 다른 생각을 꿈꿀 수 없다.


동화책 '잠자지 마 플람'은 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살려면 우리랑 똑같이 생활해야 해. 앞으로는 밤에 사냥하고 낮에 자도록 해."


큰 소리에 플람이 모깃소리로 "알았어. 노력할게."라고 답한다.

직장 내 상하 직원 간의 대화처럼 보인다.

아니, 그런 구분 없이 직장인 모두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플람은 작은 목소리지만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노력해 봤지만 너무 힘들어. 나는 나대로 살면 안 될까?"


나는 나대로 살면 안 될까... 훅 들어온다.

비록 플람의 제안은 거절되고 결국 쫓겨난 신세가 되었으나, 그의 말은 입가에 오래 맴돈다.

나는 나대로 살면 안 될까.


반전은 그다음부터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온 카야와 부루. 밤에 비가 오는 날엔 아무것도 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자신들 특성에 맞지 않게 낮에도 사냥을 해보지만 결과는 허탕일 뿐이다.

위기가 찾아온 그 순간 플람은 자기 식대로 잡은 먹이들을 그들과 나누게 된다.

이에 감동한 카야와 부루는 플람의 존재를 인정한다.


서로의 강점을 찾아 자신다움이 빛날 때,

그리고 그 자신다움이 조화롭게 융화될 때,

행복은 찾아온다는 이야기.


실로 삶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누군가를 이롭게 한다는 마술 같은 이야기.

너무나 아름다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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