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챗GPT라는 신세계

by 이도권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챗GPT '빙'을 소환했네요.

잘 둔 친구 덕에 생성형 AI를 처음으로 접했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비서를 10명은 둔 거 같아. 물론 물어봐도 어떨 땐 멍청하고 답답했던 적도 있어. 그래도 일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든 느낌이야.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바이오업계 해외법인장 출신이었던 친구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딴 나라 세상이었습니다.

혹시... 수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 이야기시 하고 있다면, 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변해도 너무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 앞에 무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란 말인가요.


무식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저는 지금의 세상변화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터부시 하거나 밀어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했었습니다.

다행히도 친구덕에 지금이라도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어색한! 제 모습이 대견합니다.


알다시피, 생성형 AI이자 사용자와 대화가 가능한 챗GPT의 출현 소식은 온 세상을 시끄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챗GPT를 다운로드하고 사용해 본 경험자가 순식간에 수 억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상 최고의 앱 다운로드 속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래의 유형의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급변하는 세상임에도 홀로 독야청청하며 동굴 안에 있는 사람

두 번째, 심각한 상황인가 갸웃하지만, 삶에는 크게 영향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

세 번째, 챗GPT가 바꿔놓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


저는 첫 번째인 동굴에서 기어 나와 겨우 바깥세상을 기웃거리는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바뀌고 있길래 다들 난리란 말인가요.

내가 속한 일터는 여전히 고요한데 말입니다.

친구는 이미, 무료 사용에 한계를 느끼고 유료사이트를 구독하는 중입니다.

GPT로 얻은 결과를 업무에 즉각 반영시켰습니다.


물론, 서로가 살아가는 길이 다르기에 그 친구를 따라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가장으로 집안을 건사시킨다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내가,

일관성 있게 회사 생활을 따박따박해오던 내가,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후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후각의 정체는 호기심과 세상 뒤처져 있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경제지에는 온통 챗GPT이야기가 넘쳐났습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신문의 너무 많은 면을 차지하는데...’ 했습니다.


IT문맹인 저로서는 몇 날 며칠을 챗GPT 기사로 울궈먹는 신문사가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너무한다 너무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고만좀 해라. 기사 쓸게 그렇게도 없나’


투덜투덜 했던 저였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어쩌다 ‘빙’과 대화를 나눴네요.

‘빙’은 대화를 사람처럼 했습니다.

질문하면 약간의 버퍼링 후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해갔습니다.

그런 ‘빙’을 보고 있자니, 웃음마저 나왔습니다.

대답도 대답이거니와, 글이 대화체로 쏟아나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투덜거렸던 저는 어느새 그 세계에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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