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예프스끼의 <미성년>을 읽고
도스또예프스끼의 5대 장편 중에서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는 이미 다 읽었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미성년>만은 읽지 않았습니다. <미성년>이 다른 5대 장편에 비해서 작품성과 문학성이 떨어지고 산만하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미성년>보다 더 산만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단편 작품들도 읽고 좋았기 때문에, <미성년>을 읽어도 제 자신이 분명히 좋아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읽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미성년>을 읽으면 제 자신의 미성숙한 면을 마주해야 할 것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담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더 미루지 말고 책을 읽자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읽었습니다.
<미성년>의 주인공은 지주 귀족인 베르실로프와 농노 처녀인 소피야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아르까지 돌고루끼입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타인의 손에 맡겨진 채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9세가 될 무렵에 가족들과 함께 살자는 연락을 받고, 뻬제르부르그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따뜻한 가정과 행복한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성숙하지는 못한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과 사건 속에서 혼돈의 몇 개월을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1년 정도 후에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는데, 그 수기가 책 <미성년>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 예상한 것처럼, 산만하다는 평가는 제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울림과 자극을 받으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번역가 이상룡씨도 역자해설에서 책의 산만함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자신의 내면 세계로만 몰두하다가 정신이 거의 분열되다시피 할 지경에 빠진 젊은 영혼의 내면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의도적으로 애매하고 불명료한 문체를 바탕으로 작품을 서술한 것이라고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제가 책을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러면 책을 읽으면서 제 미성숙한 면을 마주할 것 같다는 예상은 어떨까요? 그 역시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미성년>은 단순히 19살의 불쌍하고 미성숙한 청년이 성장하는 성장소설이 아닙니다. 출판사 서평은 <미성년>의 집필 의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삶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아버지 세대의 부재와 몰락으로 인해 온갖 불의와 도덕적 타락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진, 위험하고 불완전한 상황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자식들에 대한 작가적 문제 의식에서 씌어졌다.” 그래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창작 노트에서 발견된 소설의 책 제목 혹은 아이디어는 “미성년”이 아니라 “무질서”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소설 속에는 “무질서”한 인생 속에서 미성숙하게 살아가는 많은 “미성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읽으면서 제 안에 있는 “미성년”을 만났습니다.
주인공 아르까지는 ‘수기’에서 자신이 만든 이념에 대해 스스로 이런 평가를 내립니다. “심각하게 공상에 몰두하는 습성이 마침내 나로 하여금 내 나름의 <이념>을 발견하는 차원으로까지 이끌어 갔으며, 그 순간에는 내가 하는 모든 공상들이 뜬구름 잡는 듯한 수준에서 단번에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고, 공상 소설에서 나올 번한 것들이 개연성 있는 현실적 형상으로 변조되었다.” 아르까지가 만든 <이념>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공상에 불과했고,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이념>을 이루기 위한 작은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 베르실로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르까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베르실로프는 그저 고귀한 정신을 가지고 인류의 문제를 걱정하는 뜬구름 잡는 사람이 불과하니까” 베르실로프 역시 아름답고 철학적이며 이상적인 말을 하지만, 그의 현실은 욕망과 쾌락이 역동하는 무질서의 삶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사로서 하는 말과 글이 아르까지처럼 현실성이 없으면 어떡하지? 베르실로프처럼 아름답고 이상적인 설교를 하면서, 정작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언행일치의 완벽한 경지를 이룰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 속아서 착각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과 현실의 간극을 조금씩이라도 줄인다면, 그 만큼 제게 속한 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미 몸은 다 자랐고 말은 그럴듯하게 하니까, 이제는 마음과 태도가 자라서 현실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