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로 만든 교회

최승호 시집 <눈사람 자살 사건> 수록 시

by 세미한 소리

설 연휴에 가족들과 교보문고에 가서 각자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쪽에 있던 아들이 손짓하며 저를 불렀습니다. 그쪽으로 갔더니 자신이 보던 책을 그대로 펼쳐서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비누로 만든 교회>라는 시였습니다.


비누로 만든 교회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비누 거품을 일으키며 죄의 때를 씻을 수 있었고, 난장이처럼 키 작은 성자들은 기꺼이 남의 때를 밀어주면서 비누처럼 점점 녹아갔다. 교회는 갈수록 닳아 작아졌고 나중에는 죄와 함께 사라졌다

교회를 돌로 지은 뒤부터는 죄의 때를 씻으러 가도 온몸이 쓰라리기만 했다. 키 큰 성직자들은 근엄했다. 그들은 돌의 교회에 석상들처럼 서 있었다. 갈수록 돌의 교회는 기암괴석들처럼 불어났고 나중에는 폐허가 된 공중목욕탕처럼 관광객들이 찾는 텅 빈 명소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말하였다.
비누로 만든 교회의 시절에는 성자들이 있었으나 돌의 교회에는 성직자들만이 있었다고.


한 호흡에 읽고 나서 아들을 쳐다봤더니, 씩 하고 웃습니다. 저도 같이 씩 웃은 다음에 한 번 더 <비누로 만든 교회>를 읽었습니다. 최승호 시인의 시집 <눈사람 자살 사건>에 수록된 시인데, 깊은 울림과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키가 181cm인 목사입니다. 그러면 저는 시에 나오는 근엄하고 키가 큰 성직자일까요? 물론 시인이 말하는 성직자의 큰 키가 실제 몸의 크기를 말하는 점이 아님을 압니다. 그래도 제 마음이 떨리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남의 때를 밀어주면서 비누처럼 녹아가는 성자가 아님은 확실하니까 말이죠. 제가 근엄한 석상처럼 서 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혹시나 돌을 들고서 남의 때를 밀려고 하지는 않는지, 그래서 누군가를 쓰라리게 만들지는 않는지 걱정되었습니다. 열심히 먹고 자면서 만든 181cm의 키를 굳이 줄일 필요도, 줄일 방법도 없을 터이니, 교만한 마음과 거만한 태도라도 비누 거품으로 씻고 씻어서 그 키를 조금이라도 줄여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비누로 만든 교회>의 삽화인 에밀리 카의 <유쿼트 빌리지의 교회/Church at Yuquot Village>도 울림이 있었습니다. 원래 제목은 <인디언 교회>였는데, 인디언이라는 용어가 현재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서 2018년에 제목이 <유쿼트 빌리지의 교회>로 변경되었습니다. 에밀리 카는 캐나다 서부 자연과 원주민 문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린 캐나다 출신 작가입니다. <유쿼트 빌리지의 교회>는 밴쿠버 섬 서쪽 해안 부근의 유쿼트 마을에 있었던 실제 교회를 참고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속 교회는 숲 속의 일부처럼 숲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정비라는 이름으로 숲과 교회가 싸우지 않습니다. 숲도 교회를 방치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숲 안에 가만히 들어가 있고, 숲은 교회를 마치 나무처럼 품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로 표현하면 ‘돌의 교회’가 아니라 ‘비누로 만든 교회’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생각해 봅니다. 일단 주상복합건물 4층에 위치한 교회이니, 형태는 돌로 지어진 교회라고 해야겠지요? 이 점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시인이 경고하는 돌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돌을 말하는 점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교회의 형태가 아니라 알맹이입니다. 돌인지? 비누인지?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2019년부터 자연과 생명을 돌보는 사역을 목회적 비전으로 삼았고, 이 비전에 대한 나름의 활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과 노력을 인정받아서 2022년에는 녹색교회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보 교회 소개글에 “나우리교회는 빌딩 숲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길 소망합니다”라는 선언을 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눈에는 여전히 교회 곳곳에 있는 돌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제 교만의 키를 줄이기 위해서 들었던 비누를 다시 들고 교회에 있는 돌들을 닦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도 '비누로 만든 교회'가 되지 않을까요?


*에밀리 카 <유쿼트 빌리지의 교회/Church at Yuquot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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