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이승우 <사랑의 생애>

by 세미한 소리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p9)


이승우 작가의 소설 <사랑의 생애>의 첫 문장입니다. 사랑을 숙주와 기생체로 비유하다니, 아름다운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멋진 표현입니다. 숙주와 기생체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숙주가 아니라 기생체에 있습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주도권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있습니다. 작가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이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사람이 빠질 사랑의 웅덩이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 사랑이 들어와 사는 것이다.”(p10) 여러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의도와 계획대로 사랑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사랑이 여러분의 말을 잘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갑자기 사랑이 들어왔고,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까? 작가의 말처럼 주도권은 우리가 아니라 사랑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 주도권을 쥐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숙주는 기생체가 욕망하고 주문하는 것을 욕망하고 주문한다. 자기 욕망이고 자기 주문인 것처럼 욕망하고 주문한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전에는 하지 않거나 할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을 사랑의 숙주가 된 다음에 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세상에 떠도는 말대로, 사랑하면 용감해지거나 너그러워지거나 치사해진다. 유치해지거나 우울해지거나 의젓해진다.”(p11) 여러분의 사랑은 여러분에게 어떤 일까지 시켰나요?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 중에서 사랑이 시켜서 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늘에 있는 별을 따지는 않았을지라도, 사랑 때문에 이런저런 행동을 한 적은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때로는 멋있게! 때로는 찌질하게!


그러면 지금도 사랑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까? 안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들은 더 이상 사랑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까요? 사랑이 이제는 아무것도 명령하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사랑의 명령을 거부할 힘이 생긴 걸까요? 작가는 더 슬픈 이유를 알려줍니다.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p 167) 소설 제목처럼, 사랑에도 생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애가 다른 것처럼, 사랑의 생애도 모두 다릅니다. 어떤 사랑은 짧고 어떤 사랑은 깁니다. 또 어떤 사랑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고, 어떤 사랑은 끝난 후에야 불이 붙기도 합니다. 나아가 생애의 기간뿐만 아니라 생애의 모습도 다릅니다. 어떤 사랑은 열정적이고, 어떤 사랑은 여유롭습니다. 어떤 사랑은 재미있고, 어떤 사랑은 편안합니다. 어떤 사랑은 서로를 격려하고, 어떤 사랑은 서로를 갉아먹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어떤 모습입니까? 어떤 생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지만, 결국 사랑의 생애를 결정하는 역할은 숙주인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기생체가 숙주의 건강, 면역력, 환경 상태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사랑의 생애 역시 숙주인 사람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까지는 아니라도 사랑의 생애를 더 연장하고 싶으신가요? 사랑의 생애가 더 아름답기를 바라시나요? 숙주인 우리가 사랑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냐고요? 사랑과 그 숙주인 사람이 모두 다르기에, 좋은 사랑의 생애를 위해서 해야 할 일들도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대부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본인이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을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 일을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사랑의 대상인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일을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해보세요. 이렇게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해나가면 사랑의 생애가 더 생생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이승우 작가는 사랑이 아무리 흔하고 많이 일어나도,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p163) 각자 자신의 기적인 사랑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