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백희성의 <쓰는 사람>
건축가 백희성은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의 젊은건축가상 폴 메이몽을 수상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전문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TIFF 어워드 디자인 특별상을 수상했고,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을 집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한 성과를 얻은 그는 에세이 <쓰는 사람>에서 자신의 활약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나는 기록의 여정 속에서 평범한, 아니 어쩌면 평균 이하의 나조차도 기록을 통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기록을 통해 나는 기억을 주제로 건축 설계를 하는 건축가가 됐고, 틈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가 됐으며,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까지 올랐다. 나아가 문화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엉뚱한 몽상가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기록은 내게 수없이 많은 길을 열어 줬다.”(백희성, 글쓰는 사람, p6-7)
평범한 사람이 기록하는 습관으로 유명한 상을 받는 건축가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고, 공모전에 당선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니,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목사인 저도 기록하면 좋은 성과를 얻고, 상상만 했던 다른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요? <쓰는 사람>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또 다른 마음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성과가 기록 때문일까? 성공한 사람의 겸손한 자랑 아닐까? 평범하게 살아왔던 천재의 뒤늦은 각성 아닐까? 이 상반된 두 마음으로 <쓰는 사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혹시 제 평범한 창의력도 언젠가 여러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저도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록해야 할까요? 백희성 건축가는 무엇을 적고,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정해진 방법은 따로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에세이 <쓰는 사람>에서 자신이 기록해 온 것들을 다섯 가지로 구분해서 소개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의 기록/ 낯선 감각의 기록/ 근본에 다가가는 기록/ 불완전한 경험의 기록/ 엉뚱한 상상의 기록” 책은 각각에 해당하는 백희성 건축가의 실제 기록들과, 그 기록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에게 도움을 주었고,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친절하게 담고 있습니다. 직접 <쓰는 사람>을 읽어보시길 추천하며, 본 글에서는 제가 책을 읽고 나름대로 소화하여 제 자신에게 적용하기로 다짐한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질문하기”입니다. 백희성 건축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가장 독이 되는 게 싫음이라고 말합니다. 싫다는 감정으로 시선과 마음을 차단하면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싫음에 질문을 던지고 자세히 살펴보면 창의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싫은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대안 제시하기”입니다. 백희성 건축가의 팀 회의에서는 한 가지 특별한 규칙이 있습니다. 그 어떤 부정적인 리액션도 허용하지 않고, 부정이 아닌 다름으로 표현하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기고 부정적인 말만을 하면, 그 회의에서 퇴출되고, 다음 회의부터 다시 참석한다고 합니다.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대안 없는 비판은 감정만 지치게 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 불만, 원망만을 계속 기록하는 일은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그래서 저는 부정적인 생각과 상황에 대한 제 나름의 대안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은 “불완전한 기록 꾸준히 하기”입니다. 제가 기록한 질문들과 대답들, 그리고 특히 대안들은 거의 다 불완전할 것입니다. 어설프고 실현 가능성도 낮겠지요. 제 기록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백희성 건축가의 기록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록들이 쌓이고, 하나의 기록이 다른 기록을 만나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기록들이 만나서 질문과 대안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때로는 소멸되고, 때로는 폭발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기록은 완전하지 않지만, 그 기록들이 모이면 힘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백희성 건축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 지난 기록을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불완전함의 뒷면에 있는 가능성을 믿고, 기록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건축자 백희성의 <쓰는 사람>이 저에게 기록하려는 마음을 준 것처럼, 이 글도 누군가에게 같은 마음을 선물하기를 소망하며 불완전한 이번 기록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