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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Jun 02. 2023

1억 5천만 원짜리 바나나보다 내가 더 귀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WE》

 이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WE》를 다녀왔습니다. 리움미술관은 이 전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 제목 《WE》는 카텔란의 작품 제목을 차용한 것이기는 하나 그 작품에 대한 직접적 참조보다는 확장된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카텔란 작업에서 억압, 불안, 권위, 종교, 사랑, 나와 가족,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란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은 토론을 활성화하고 모종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아홉 번째 시간>)은 특정 종교를 넘어 지역적 맥락에서 권위와 억압에 대한 토론을 주선하고, 시신을 연상케 하는 아홉 개의 카라라 대리석 조각(<모두>)은 최근 우리에게 일어난 참사를 소환하고 추모하며 우리의 현실과 공감한다.


 소개처럼 전시 《WE》의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과 질문이 생겼습니다. 두려움, 불편함, 쾌감, 따뜻함, 그리고 아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도 떠올랐습니다. 그중에  ‘2019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처음 등장한 작품 <코미디언>이 유독 제 안에 여러가지 생각을 만들었습니다. 


 카텔란은 마이애미비치 근처 시장에서 산 바나나를 전시장 벽에 테이프로 붙인 다음 <코미디언>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를 했는데, 놀랍게도 하루 만에 이 바나나가, 아니 작품 <코미디언>이 12만 달러(약 1억 5천만 원)에 팔립니다.(참고로 작품을 구매한 사람에게는 인증서가 발급된다고 합니다.) 코미디 같은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는데, 미국인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전시된 바나나를 뜯어서 먹어버렸습니다. 주최 측은 바나나는 며칠마다 교체되는 것이고 작품의 핵심은 바나나가 아니라 발상이라며, 바나나를 먹은 행위예술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카텔란은 기존 예술의 틀을 깨버린 창의적인 작가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만, 동시에 예술을 빙자한 상업적 상술이라는 논란과 비난도 얻게 됩니다. 


 며칠 전 이 논란의 작품을 실제로 봤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딸랑 바나나 하나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습니다. 훌륭한 코미디언의 수준 높은 코미디를 본 것처럼 웃음이 나왔습니다. 믹스커피의 자극적인 웃음이 아니라 다양한 맛을 품고 있는 핸드 드립커피 맛 웃음이라고 할까요?



 뜬금없지만 그 순간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모나리자>가 떠올랐습니다.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이 바나나 정도라거나, 반대로 벽에 바나나를 붙인 작품이 <모나리자>처럼 위대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모나리자>를 실제로 본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모나리자>를 보고 역시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생각보다 작네, 명작이라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보기 불편하네, 뭔가 더 대단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러네. 이처럼 위대한 작품이든, 위트 있는 작품이든, 평가는 본 사람들의 몫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명작이라도 내가 보기에 아무런 감흥이 없을 수 있고, 아무리 상업적인 상품이라도 보는 사람이 감동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가치판단의 문제이고, 그렇다면 내가 어떠한 가치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치판단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까? 다른 이들과 달라도 됩니다. 특별히 정의롭거나 고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점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제 자신의 기준은 거의 없고, 사회가 제시한 기준이나 부모님, 가족 등 주변의 사람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삽니다. 예술작품도 남들이 명작이라고 하면 명작이라고 느끼고, 일상생활도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 늘 애쓰며 삽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 전혀 없는데 말이죠. 내가 보기에 좋은 작품이면 좋다고 느끼면 되고, 내가 보기에 별로이면 별로라고 느끼면 되고, 남들이 멋있다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되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요?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가치판단 기준에 있어서 돈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입니다. 시장에 있는 바나나와 완전히 똑같은 바나나이지만 1억 5천만 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되었을 때, 그 바나나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바나나가 되는 것처럼, 오늘 사회에서 돈은 그 어떤 가치기준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저울로 길이를 잴 수 없고, 자로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처럼, 돈으로 가치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지, 가치를 정하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울로 자신의 키를 재려는 한심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가치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에서 여러분의 가치는 어떤가요? 적어도 1억 5천만 원짜리 바나나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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