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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Jun 16. 2023

여전히 서열 싸움 중입니다.

 2년째 서열싸움 중입니다. 2021년 6월 1일에 저희 집 식구가 된 고양이 해와 달이 말이죠. 나이도 덩치도 비슷해서 싸움이 치열할 뿐만 아니라, 누가 이겨도 압도적 승리가 아니기에 진 녀석이 곧바로 도전합니다. 그래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며 서열 정리가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해가 이겨서 밥도 간식도 먼저 먹고, 어느 날은 달이가 이겨서 해를 저 구석으로 쫓아내 버립니다. 매번 싸우고 지는 일을 반복하는 녀석들도 힘겹겠지만, 제 입장에서도 참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싸우지 말라고 집에 고양이 화장실도 2개, 밥그릇도 2개, 장난감도 여러 개 두었거든요. 무엇보다 따로 사용가능한 전용 집사들이 상시 대기 중입니다. 굳이 서열이 필요하지 않은데, 계속 서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죠. 집사 입장에서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마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신도 같은 마음이겠죠? 왜냐하면 우리 역시 고양이처럼 굳이 할 필요 없는 서열 싸움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까요. 학생은 성적으로 등수가 매겨지고, 대학에 가면 대학 자체에 서열이 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회사, 직급, 연봉 따위로 서열이 생깁니다. 심지어 게임을 해도 등급이 있고, 식당도 미쉐린 가이드, 블루리본, 혹은 서울지역 3대 평양냉면집처럼 순위가 있습니다. 이렇게 순위를 매기는 점은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BBC 선정 여행하기 좋은 아름다운 10대 도시, 뉴욕타임즈 선정 꼭 읽어야 하는 10대 도서처럼, 각자가 충분히 선택하고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일까지도 굳이 친절하게 등수를 매겨서 소개하니 말이죠.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놀러 갈지, 무슨 책을 읽을지 정하는 일이 때로는 피곤하고 귀찮습니다. 큰맘 먹고 돈과 시간을 썼다가 실패할까 봐 염려가 되기도 하고요. 이럴 때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식당, 여행지, 책을 추천해 주면 고맙지요. 그렇다고 순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순위가 있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과 평가보다 그 순위를 우선시하게 되고, 그럴 때 각자 자유롭게 즐기기보다, 더 높은 순위의 음식을 먹고 여행지를 방문하고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제가 과장했나요? 그러면 여행, 음식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살펴볼까요?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보다, 높은 등수와 연봉을 받으며 높은 수준의 삶을 살기 원하지 않습니까? 자신만의 생활방식보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삶의 모습대로 살기 원하지 않습니까? 취미나 일상이나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서열 싸움을 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고, 노력에 따른 충분한 보상도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은 축하받아야 마땅합니다. 전문성을 키워서 좋은 직업을 얻는 사회인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각자의 노력에 걸맞은 달콤한 보상도 얻어야겠지요. 그러나 순위와 서열은 필요 없습니다. 명문대에 가지 않아도, 꿈의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고, 나름의 보상을 얻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서열 싸움 중이십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거기서 서열과 순위를 빼 버리세요. 조금 귀찮고 어려워도 여러분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믿어보세요. 비싸고 대기시간도 긴 미쉐린 가이드 식당 대신에 편안한 차림으로 가서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동네 단골 식당에서 한 끼도 충분히 맛있지 않을까요? 뉴욕타임즈 선정 도서를 스마트폰으로 주문해서 읽는 대신에 서점에 구경 가서 왠지 느낌이 좋은 책을 무작정 사서 읽는 것도 낭만 있지 않나요? 

 

 압니다. 낭만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면 믿어보는 것은 어떤가요? 남들이 정한 순위보다 내 마음과 판단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서열이나 순위, 고작 숫자 따위가 사람을 평가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평범한 제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서열 없이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서열에서 밀린 고양이를 더 세심하게 보호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 하는 누군가도 내 부족함을 채워주고 나에게 힘을 더해 주고 있다는 것을. 이 믿음으로 서열 싸움을 멈추고, 낭만을 가지고 나답게 살아 봅시다.




*사실 해와 달은 서열 싸움을 할 때가 아니면, 사이 좋게 지냅니다~ 우리도 함께 사는 이들과 사이 좋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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