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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Jun 27. 2023

유대인도 독일군도 함께 사랑할 순 없을까?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궁금합니다. 부모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할까? 동생보다 사랑할까? 친구들은 나를 얼마나 사랑할까? 다른 친구와 더 친한 건 아닐까? 사귀는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할까? 내게 실망해서 떠나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는 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나는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나요? 오래 참을 수 있나요? 상대방을 배려하나요? 만약 자신의 사랑을 온도계로 측정한다면 몇 도 일까요? 너무 차갑거나 뜨겁지 않아서 다른 이들이 지내기에 적당한 사랑의 온도는 얼마쯤 될까요?  떼제 공동체를 설립한 로제 수사를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제 수사가 처음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떼제에 와서 혼자 생활하고 있을 때는 1940년으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었습니다. 독일군이 떼제 근처까지 점령했었지요. 그래서인지 독일군을 피해서 도망친 유대인들과 난민들이 로제 수사에게 와서 숨겨 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독일군에 걸리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험할 수 있었지만, 로제 수사는 사랑으로 그들을 숨겨주고, 그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좋은 감정이나 느낌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사람을 위해 불편하고 귀찮고 위험한 일을 감당하고 희생할 때 비로소 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로제 수사의 사랑은 용감하고 멋지네요. 그에 비하면 제 사랑은 겁쟁이이고요. 그런데 로제 수사의 사랑의 멋짐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떼제 근처에 독일군 포로수용소가 두 군데 세워졌습니다. 로제 수사는 포로수용소를 찾아가서 포로가 된 독일군에게 필요한 것을 나눠주고, 떼제 공동체에 초대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보살핍니다. 독일군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로제 수사와 떼제 공동체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로제 수사의 행동이 전혀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로제 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권력을 잡았을 때 많은 이들을 증오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소수의 미친 사람들은 어느 민족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층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유례없는 폭력을 불러왔다고 해서 그 나라의 국민 전체를 멸시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까? 다른 민족보다 더 죄지은 민족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민족은 있지도 않고 앞으로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로제 수사는 독일군을 피해 도망친 유대인과 난민을 숨겨줄 때 품었던 사랑을 독일군에게도 똑같이 나눠 주었습니다. 로제 수사에게는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도 없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조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도 독일군도 다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제 사랑은 참 조건이 많습니다. 이래서 사랑하고, 저래서 사랑할 수 없고.  


 평범한 제가 로제 수사처럼 사랑하기는 어렵겠지만, 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1950년 후반부터 떼제 공동체에 많은 청년들이 방문해서, 기존에 모였던 예배당보다 더 큰 예배당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때 ‘속죄의 활동’이라는 단체를 통해 독일 젊은이들이 떼제에 와서 예배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독일 개신교회를 배경으로 시작한 ‘속죄의 활동’은 전쟁 동안 독일의 적국이었거나 독일이 점령했던 나라에 젊은이들을 파견해서 학교나 병원, 교회를 짓는 봉사를 하면서 속죄를 실천하고 화해의 밑거름이 되려고 노력한 단체입니다. 그들의 봉사로 1962년 8월에 예배당에 봉헌되었는데, 이 교회의 이름은 “화해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 입구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들어오는 그대, 화해하십시오. 아버지는 아들과, 남편은 아내와, 믿는 이는 믿지 않는 이와, 그리스도인은 갈라진 그의 형제들과” 


 제가 할 수 있는 일,  바로 화해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유치한 싸움의 화해도 괜찮습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소한 화해도 괜찮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화해를 하며, 사랑의 힘을 키워봅시다.





*참고도서 : 신한열, <함께 사는 기적>, 신앙과지성사

(저자 신한열 수사는 떼제 공동체의 수사이며,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그림 :  마르크 샤갈, <흰색 십자가 책형> 1938, 캔버스에 유채, 155×139.5,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샤갈은 <흰색 십자가 책형>에서 1938년부터 나치가 본격적으로 저지르는 대규모 유대인 박해의 만행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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