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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Apr 12. 2024

양재천은 벚꽃 없이도 충분하다. 우리도 그렇다.

 저의 평범한 출근길 양재천이 지난 며칠 동안 특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벚꽃이 아름답게 피었기 때문이죠. 벚꽃 핀 양재천은 그냥 가는 동네 산책길이 아니라 멀리서도 찾아오는 특별한 장소였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특별한 벚꽃 길을 혼자서 그리고 연인, 친구, 가족과 함께 걸었습니다. 멋지다, 예쁘다 감탄하며 걷는 이들도 있었고, 억지로 끌려와서 많은 사람에 질려 간신히 걷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멋진 포즈를 잡고 사진 찍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 옆에서 솜사탕 파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양재천 주변 카페와 식당에는 손님이 가득했고, 주차하기 위해서 빙빙 도는 차도 있었습니다. 지난 며칠 저도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져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벚꽃 길을 걸어서 출근하니까 일하러 가는 것 같지 않고, 놀러 가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았습니다. 평범한 하루가 아니라 특별한 하루처럼 느껴졌습니다. 


 벚꽃 하나 폈을 뿐인데, 같은 장소가 이렇게 달라지는 일이 새삼 신기했습니다. 벚꽃이 양재천의 가치를 높였다고 할까요? 눈에 예뻐 보이는 꽃의 힘이 대단합니다. 문득 사람도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 줄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같은 군인도 별이라는 꽃을 달면 가치가 확 올라가서 특별한 군인이 됩니다. 운동선수도 금메달이라는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습니다. 심지어 방송국에서도 와서 촬영합니다. 모두 칭찬하고 좋아해 주고, 대단하다고 감탄합니다. 벚꽃이 양재천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처럼 사람의 꽃도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모두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꽃처럼 특별해 보이는 직업을 가지려고 어려서부터 공부합니다. 사회인이 되면 연봉, 차, 외모, 명예,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꽃이라면 자신의 나무에 달려고 애씁니다. 여러분이 피우려는 꽃은 무엇입니까? 그 꽃이 여러분의 가치를 높여줍니까? 그래서 행복하십니까?


 목사인 저는 무슨 꽃을 피워야 할까요? 멋진 성전? 많은 교인? 온라인 예배 조회수? 그런데 꽃을 꼭 피워야 하나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양재천은 벚꽃이 핀 특별한 양재천이 아니라 제가 출근하고 퇴근할 때 걸어가는 동네의 평범한 양재천입니다. 무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양재천을 빠르게 걸으면 집에서 교회까지 15분이면 도착합니다. 거의 대부분 양재천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고, 특별한 장소로 놀러 온 설레는 기분도 없습니다. 그저 출근길이고 퇴근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듣고 있는 노래와 주변 풍경이, 심지어 날씨와 바람, 냄새까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의 양재천은 제게 벚꽃 핀 양재천보다 특별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걸어서 출근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양재천 산책길 나무 아래로 들어가면 그나마 걸어갈 만합니다. 갑자기 비가 올 때에도 그렇습니다. 우산이 없어도 나무 아래로 걸어가면 비를 덜 맞습니다. 교회에 앉아서는 설교문이나 글이 잘 써지지 않았지만, 양재천을 걷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고, 막힌 글이 순간적으로 풀릴 때도 있습니다. 산책 나온 강아지,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와 학생들은 벚꽃보다 더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요. 이처럼 제게 양재천은 벚꽃이 없어도 충분히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별을 단 장군뿐만 아니라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는 모든 군인들이 고마운 존재입니다. 운동선수로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금메달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특별한 꽃이 없어도 우리 존재는 이미 충분히 훌륭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하루와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면이 있습니다. 양재천은 벚꽃 없이도 충분하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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