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은희경
은희경 작가의 책, "새의 선물"을 끝냈다.
책을 다 읽고서야 이 소설이 은희경 작가의 등단 소설임을 알았다. 읽으면서 등단소설이라 차마 생각조차 못한 것은 이미 소설이 주는 경이로움이 너무 컸었기 때문 아니었나 싶다. 그간 은희경 작가의 인터뷰나 몇몇 글들을 보고 다소 불호의 시선이 없었던 것이 아님에도 이 소설은 그 모든 것을 다 떠나 작가 은희경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 우선 매우 입체적인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어디에선가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은 물론이거니와 누구 하나 소홀하거나 과하지 않은 촘촘한 캐릭터 간 어우러짐은 이 소설에 몰입하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이미 성숙해 버린 5학년 여자아이의 시선은 날카롭기가, 그리고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닮았을 통찰의 깊이가 소설을 읽을수록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대를 묘사하는 방식. 정치적으로 매우 큰 사건들을 슬쩍슬쩍 건드리며 묘사되는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집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나 실감 나게 묘사가 되던지,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인 양 느껴질 지경이었다. 물론 이것은 흔치 않게도 나의 어린 시절 또한 유사한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겠지만, 그 실제가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와 머릿속에서 묘하게 병합되는 것이 이 소설에의 몰입도를 나타내준다.
또한 이야기의 전개. 마지막 챕터에 가서야 너무도 명확하게 밝혀진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은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은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그에 걸맞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들은 어느 것 하나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인 것 하나 없이, 그렇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어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특히나 내가 이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한 캐릭터가 있다. 주인공 여자아이의 이모. 이미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자기에 비해 속이 투명하고 생각이 깊지 않은 그녀에 대한 주인공의 묘사, 시선, 설명 들은 자꾸 어딘가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무언가 나와 닮은 점이 있는 듯한 이모의 모습이 거울 치료 마냥 아픈 것을 넘어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주인공의 행동과 시선이 너무도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모는 '생각의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짜장면 하나를 시키려 해도 네가 흰옷이니까, 다른 걸 시키려다 다시 이 집은 그래도 짜장면이 유명하니까, 그런데 짜장면과 어울리는 건 야끼만두인데, 야끼만두를 시키기에는 너무 많으니까 등등과 같이 '짜장면 두 그릇 주세요'를 하기 전까지 이모가 이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해대는 말을 듣는 주인공의 감상이 '어쩜 저렇게 생각의 과정을 투명하게 다 내보일까'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그 고민의 과정을 함께 했으면 하고 내뱉었을, 혹은 별 생각이 없었을 이모에 동감하면서도, 그것이 투명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정말로 거울치료의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그 외에도 할머니가 자기의 친딸(이모)과 손녀딸인 자기가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까를 고민하면서도, 이모를 구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점, 그렇지만 그 아픔을 "그런 일은 실제로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겠다고 해결하는 장면 등은 그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태도에 탐복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 너무도 다시금 생각하고 싶은 장면이 많은 소설이라 감상도 두서가 없다. 오랜만에, 참 좋은 소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