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정신과

by Decenter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에 다녀왔다.


여느 때와 같은 날들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은 자꾸만 곪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뻔히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의지로만 극복하기에는 이미 선을 넘어버린 느낌. 이대로 방치하다간 될 대로 되라가 내 일상을 완전히 망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해야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오는 우울이 감당하기 어려운데, 일이 도무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랜 시간 집중은커녕 컴퓨터 앞에 앉는 일 조차가 힘겨운 것이다. 그 힘겨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것이 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번엔 도움을 좀 받아보기로 했다. 어쨌든 하루하루는 흘러가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해서.


막상 가겠다 마음을 먹으니 어젯밤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사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떠오르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두서없는 말들이라도 토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너무 많은 말들을 하려다 아무 말도 못 하는 건 아닐까.


긴장감에 잠을 설치고 오전 내내 허둥대다 병원에 도착했다. 그래봤자 그저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인데 내 몸은 꽤나 긴장을 했는지 병원 대기실에서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찬찬히 나를 곱씹게 하는 수십 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아픈 배를 움켜쥐는 사이 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필, 화장실에서. 가뜩이나 허둥지둥 한 마음에 더 허둥지둥한 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생에 처음 마주한 정신과 의사는 너무 인자할 것도, 사무적일 것도 없는 적당함의 아우라가 있었다. 너무 온기 있지도 않은,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모노톤의 말투와 질문들. 그 덕인지 제법 담담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이해할 수 없는 나날들. 일을 할 수 없는 나의 상태에 대한 호소. 중독. 충동. 수많은 주제가 전시하듯 하나 둘, 나열되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끊이지 않는 의사 선생님의 키보드 소리. 왜 키보드를 저렇게 저렴한 걸 쓰실까. 소리도 시끄럽고 손목도 아프실 텐데.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말을 기록할 기세의 키보드 소리에 나는 말을 하면서도 뚫어져라 키보드 기종을 살피고 있었다.

삼일 치.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심층 검사를 권유받았다. 그래, 이왕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겠지. 할 수 있는 건 어쨌든 해본다는 측면에서 심층 검사 예약도 덜컥 걸어놓고 왔다. 그래.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그저 한걸음, 한걸음. 그래도 아직 나를 방치하기보다 이렇게나마 걸음을 떼길 선택하는구나 싶어 마음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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