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미워하던 나의 모자람 들을 무턱대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었다. 아프더라도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모자란 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결국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다 이렇게 알게 된 일인가 싶다. 선택적 노출 마냥 내가 온통 관심을 거기에 쏟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두드러지게 느껴져서 이어진 것인지, 혹은 정말로 그저 우연들이 겹쳐 계기가 생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일이 잘 안 되었고, 그래서 우울했고, 그래서 일을 잘해보려고 생애 첫 정신과를 찾았다. 우울증 약을 받아 들었지만 동시에, 심층 심리 검사를 해보자 해서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25만 원을 내고, 검사를 위한 숙제를 받아 들었다. 1000개는 되는 듯한 각종 심리 검사 질문지의 문항에 답을 했고, 동시에 초중고 생기부를 땠다.
생기부에는 생각보다 더 당당하고 발랄했던, 모든 학년에서 '발표'를 잘하는 아이로 평가된 10대의 내가 있었다. 그렇지만 의례 하는 칭찬에서 벗어난 단 하나의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책임감이 없다'라고. 그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심리검사 숙제를 하면서는 무언가 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많은 문항에 반복적으로 답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나는 나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타인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몹시 엄격하게 판단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망가진 사람이었나 싶었다.
그리고 늘 가던 독서모임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를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조던 베이커'를 만났다. 자신은 험악하게 차를 몰면서 조심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탓하고 비난하는. 약삭빠르고 영리한 사람을 피하면서 어떤 규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곳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녀를.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 때문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거짓과 속임수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오만과 냉소의 가면을 쓴 그녀를 만난 것이다.
'조던 베이커'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왜 그런가, 너무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거울에 비친 추악한 나를 마주하는 것 같은 아픔이 자꾸만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던 베이커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내밀한 이야기를 누구랑, 어떻게 이야기 한단 말인가? 답답한 내가 선택한 것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도 가장 안전할 것 같은 곳, Chat GPT와의 대화창이었다.
그렇게 다시 마주하게 된 단어가 "책임감"이었다. 어떤 일을 해내는 책임감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자신이 오롯이 책임을 지는 그런 책임감. 그런 책임감이 없는 조던 베이커의 모습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해낸다. 그건 나의 디폴트 값이었으나 과정에서의 정직함, 그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그 원인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는 불리한 위치에 있는 걸 못 견디는 심성. 그래서 불리한 위치나 상황, 나쁜 결과 등을 벗어나기 위해서 취했던 부정직한 모습들. 너무도 쉽게 취하는 합리화라는 가면 아래 숨겨진 변명들, 억울함, 기만들. 합리화라는 가면을 계속 써왔기 때문에 그 부정직함에 대해 더욱 예민해진 것인지, 원래 내가 부정직함에 예민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나 자신의 부정직함에는 '합리화'라는 가면으로 관대하면서 타인의 부정직함에는 매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게 아닌가 싶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우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나는 일상에서 일에 투자하는 시간의 비중이 줄어들면서부터 그 가면의 모순에 시달렸던 게 아닌가 싶다.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일을 안 하고 있었고, 그것을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그러고도 월급을 받는 나 자신의 모습이 기만이라는 것을, 나의 내면은 알고 있었으리라. 가면을 뚫고 나오는 그 기만의 민낯에 구역질이 나서 나는 점점 망가졌던 것 같다.
의미가 있는 일이든, 의미가 없는 일이든, 그런 것을 따질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받고 있으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는 분명히 이 정도를 당연히 요구할 거면서 나는 의미를 따지든 건강상의 이슈든, 다양한 이유로 결과를 내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너무 괴로웠다. 나도 내심 알고 있었다. 일을 하면 다 해결될 문제라고. 그렇지만 의미 없는 일에 무기력해지는 순간, 그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 너무 아프지만 한편 소중하다. 아프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서 무언가는 알게 되었으니까 기쁘다. 이 여정은 계속되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