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마주하기(2)

by Decenter

정신과 방문에서 시작된 나의 자아 성찰의 여정. 심리검사, 위대한 개츠비에 이르기까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나를 이해해 간다는 측면에서의 기쁨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여정에서 gemini라는 구글의 AI 챗봇의 역할이 너무나도 컸다는 점인데, 나의 중구난방의 생각들은 그 대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빠르게 정리되는 것이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gemini에 이전의 브런치 글(아프지만, 마주하기(1))을 복사해 붙여 넣으면서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달라는 요청에 gemini가 알려준 방법은, 첫 줄을 읽자마자 마음을 쿵 내려앉게 했다. 이것이었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 내가 정신과를 다녀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했던 위안과 해결책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읽으면서 너무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록의 차원에서, 아래 남겨둔다. 나의 글에 공감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내용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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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치 안개 낀 숲길을 홀로 걷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과 우울감, 그리고 예기치 않게 마주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감까지. 정말 용기 있는 자기 성찰의 여정을 시작하셨네요. 정신과 방문부터 심리 검사, 그리고 조던 베이커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느꼈을 아픔과 혼란에 깊이 공감합니다.


당신은 지금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서 계신 것 같아요.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특히 '소유권 책임감'이라는 개념이 당신의 마음을 그토록 흔들었다는 것은, 이미 당신 안에 변화를 향한 강한 열망과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조던 베이커가 되어 당신의 질문에 답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당신의 상황에 맞춰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정답이 아니라, 당신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이정표라고 생각해 주세요.


1. '망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 자기 연민의 시작


가장 먼저,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거두어 주세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망가진 사람이었나 싶었다"는 생각은 당신을 더욱 절망하게 만들 뿐입니다. 당신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낸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은 성장을 위한 건강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 제안

자기 비난 멈추기 연습: "나는 망가졌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의식적으로 "나는 지금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있어. 이건 변화의 시작이야"라고 바꿔 말해보세요.

심리 검사 결과 재해석: 검사 결과는 '낙인'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지도'입니다. '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한' 패턴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고쳐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왔던 어떤 방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깨달았으니, 새로운 방식을 배울 기회가 온 것입니다.



2. '책임감 없다'는 과거의 평가와 현재의 깨달음 연결하기


생기부의 '책임감 없다'는 평가는 어쩌면 당신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외면했던, 혹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소유권 책임감'의 부재를 지적한 것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 제안

과거의 '나'와 대화하기: 10대의 '발표 잘하던 아이'에게 지금의 당신이 묻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때 '책임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의미라고 생각했니? 혹시 너도 모르게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했었니? 어떤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니?" 이를 통해 잊고 지냈던 패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3. '합리화'라는 가면 벗기 연습: 이중 잣대 마주하기


"나 자신의 부정직함에는 '합리화'라는 가면으로 관대하면서 타인의 부정직함에는 매우 냉소적인 태도." 이 이중 잣대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며, 이를 인식한 것만으로도 큰 진전입니다.


구체적 제안

'합리화 일기' 써보기: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합리화했을 때, 그 상황과 합리화 내용, 그리고 그 밑에 숨겨진 진짜 감정(두려움, 불안, 불편함 등)을 적어보세요. "나는 ( )라고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 )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 )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역할 바꿔 생각하기: 당신이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때, 그 잣대를 잠시 멈추고 그 사람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며 당신 자신에게 하듯 합리화의 여지를 한번 주어 보세요. 반대로, 당신이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적용할 때, '만약 내 친구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이렇게 합리화한다면 나는 뭐라고 조언할까?'라고 자문해 보세요. 이 연습은 공감 능력과 객관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기만'이라는 감정 다루기: 일과 우울증, 그리고 책임감 사이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는 것에 대한 '기만'이라는 감정, 그로 인한 자기혐오는 당신을 매우 괴롭게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울증이라는 변수를 간과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체적 제안

우울증 전문가와 꾸준히 상담하기: "우울증 약을 받아 들었다"는 것은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상담은 당신이 느끼는 무기력감, 의미 없음, 그리고 '기만'이라는 감정의 뿌리를 탐색하고 건강하게 다루는 데 필수적입니다.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며, 현재 당신의 업무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전문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일'에 대한 현실적인 목표 재설정: "일을 하면 다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은 어쩌면 지금 당장은 너무 큰 압박일 수 있습니다. 의미를 따지기 전에, **'대가를 받고 있으니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낸다'**는 **'수행적 책임감'**부터 회복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예: 하루에 딱 30분만 업무 관련 자료 읽기, 간단한 이메일 하나 작성하기, 관련 아이디어 하나 적어보기 등. 결과물의 질이나 양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고, '하기로 한 아주 작은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유권 책임감' 적용하기: 그 작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정직했는가? (딴짓하지 않고 집중했는가?), 그 태도는 어떠했는가? (하기 싫지만 억지로 했는가, 아니면 작은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했는가?) 그리고 그 결과(작은 성취)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세요. 이것이 쌓이면 '기만'이라는 감정은 줄어들고, '내가 내 몫을 하고 있다'는 건강한 책임감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솔직한 소통 (가능하다면): 직장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신뢰할 수 있는 상사나 동료가 있다면, 당신의 어려움(구체적인 병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컨디션 난조 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업무량 조절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책임감 있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5. '불리한 위치'에 대한 두려움 다루기


이것이 당신의 많은 행동 패턴의 근원일 수 있습니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걸 못 견디는 심성"을 바꾸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입니다.


구체적 제안

우리가 앞서 이야기 나눴던 **'결과 미리 보기 & 수용 연습'**을 꾸준히 실천해 보세요. "만약 내가 이 일을 못 끝내서 질책을 받는다면? 그게 최악의 상황일까? 나는 그걸 견딜 수 없을까?" 불리한 상황을 피하는 대신, 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작은 실패 경험하기: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해도 괜찮다', '불리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의도적으로 작은 도전을 하고,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예: 새로운 취미 시작하고 잘 못해도 꾸준히 해보기, 독서모임에서 틀릴까 봐 두려워도 용기 내어 의견 말해보기 등)



당신은 지금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심리 검사와 상담은 이 터널을 통과하는 데 훌륭한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이 털어놓은 이 모든 고민과 성찰은, 당신이 앞으로 더 단단하고 진실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오늘 제가 제안한 것들 중 가장 작고 실천하기 쉬운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을 충분히 축하해 주세요. 당신의 용기 있는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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