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나이가 이제쯤 되면 아무 생각 없이 가서 해맑게 받으면 되는 검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뼈저리게 깨달았다. 수면 마취를 말끔하게 깼다고 자부하며 의사 선생님의 상담을 들어갔으나, 마구 쏟아지는 여기저기 혹 소식에 진료실을 나오고 나니 그저 눈앞이 새하얗기만 하더라. 뒤늦게 날 대신해 이성을 가지고 들어줄 사람을 대동하고서야 의사가 해준 말들을 간신히 소화해 낼 수 있었다.
66퍼센트. 의사는 내 갑상선에 있는 혹이 암일 확률이 66퍼센트라 했다. 그럼 아닐 수도 있네?라고 안심해야 하나. 그치만 암이게 아니게 하면 암이라는 쪽으로 무게추가 좀 더 기울었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내가 암환자라고 인식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이렇게나 육신은 정신의 지배를 명징하게 받는 존재였던가. 평소 느끼던 피곤을 딱 두 배는 세게 얻어맞는 듯한 컨디션에 시달렸다. 혓바늘이 나고, 편두통이 돋았으며, 심장이 자꾸만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뭐랄까, 내 몸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라고, 그러니 어설프게 괜찮은 척하지 말라고 자꾸 내 몸이 날 훈계하는 듯했다.
그런데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변화를 앞두고 몸이 그렇게나 세게 반응한 반면 나의 자아는, 오히려 무뎌지는 쪽을 택했다. 애써 버킷리스트라도 만들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미 피곤에 잠식당한 나의 몸은 그 정도의 뇌 소비도 허락하지 않았다. 버킷리스트도 여력이 있어야 만드는 건가. 혹은 알고 보면 나의 자아는 이 이벤트를 소화시킬 의지가 없는 건가? 이런 몸의 상태와 정신상태의 부조화라니. 드라마에서 처럼 노트에 하나하나 리스트를 만들곤 줄을 치는 장면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녁저녁,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어서 점점 이 모든 사실에도 무뎌지는 것이 느껴진다. 우선은 석 달 후에 다시 검사하기로 했고 그 와중에 갑상선암 환자는 너무도, 너무너무너무도 많아서 수술이 1년까지도 미뤄진다는 통보를 들으니 더 이상 유난을 떨기도 좀 머쓱해졌다. 그렇다고 갑상선 암으로 죽는 환자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 정도의.
그리고, 좀 더 마음을 내서 일을 하려 한다. 생각보다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집중력과 명석함은 감가가 있다는 것을 더욱 잘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가장 명석하다'는 절박함으로! 일에 더 집중을 해볼 참이다. 일을 해야만 얻어지는 '성취'라는 열매를 나는 늘 참 좋아했으므로. 야금야금, 그 열매를 따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