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카페 여사장님

안동에 적응해서 살다.

by 김선희

공공기관에 다녔던 나는 근무지이동으로 경상도 내에서 몇 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신입시절 봉화에서 만났던 착한 신랑과 3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당시 고향인 안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신랑과의 신혼생활을 보내기 위하여 나는 대구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원 생활까지 하였던 터라 대구경북지역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안동 한옥집에 올라와보니 편안동 감성한옥길에 한옥카페가 생겼다.


이 시골동네에 한옥카페를 개업하다니 사장님이 용감하신가 보다. 아니면 별 생각이 없는 부자가 아니실까? 궁금증이 떠올랐다. 개업하자마자 아메리카노를 천 원의 행복으로 이벤트 하셨는데 손님들이 꽤 많았다. 아파트 한동 없는 주택가 골목에서 장사가 잘 되어 신기한 마음뿐이었다. 다음날 신랑과 늦잠에서 일어나 한옥카페에서 브런치 세트를 먹었는데 가격이 싸고 맛도 좋았다.

"사장님, 소시지랑 토스트, 샐러드 다 맛있어요. 잘 먹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젊은 부부가 와서 접시에 남김없이 음식을 흡입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통창 테라스를 멍하니 보는 모습에서 딸처럼 짠한 마음이 드셨단다. 10년 차 회사원으로서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사원, 대리시절에는 일을 배우고 사람에 적응하느라 바빴는데, 관리직으로서의 미래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팀장님들이 팀원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고 임원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말에 안동 올 때마다 당연하듯 한옥카페에 가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브런치 세트뿐만 아니라 피자, 함박스테이크, 떡볶이까지 새 메뉴가 계속 출시되어 사진과 리뷰도 해드렸다. 떠돌이처럼 살았는데 마음이 푸근해지고 진짜 제2의 고향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부산 깍쟁이가 안동 할머니에게 플러팅을 당했다며 신랑이 놀렸다. 결혼하고 나서 멍한 눈빛을 비칠 때마다 신랑이 불안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들어 가는 와이프에게 여행, 레스토랑, 옷등 선물을 엄청 했었다.


한옥카페 사장님은 평생 조리사로 일하시다가 남편이 돌아가시고, 개인택시를 판 돈으로 카페를 개업하셨단다. 딸이 세명 있는데 모두 수도권에 있어 명절에나 볼 수 있다고 그리워하셨다. 수녀원에서 7년간 부엌일을 하면서 자녀학자금을 지원받으셨다고 하시는데 대단해 보이셨다. 아들 못 낳는다고 집안 땅을 빼앗긴 이후에는 오히려 시집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사신 듯하였다.

"사장님, 멋있으세요. 인생이 아름다워 보이세요."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 신랑과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소통하고 싶었는데 나눌 대상이 없어서 마음이 우울했던 것 같았다. 한옥카페만 갔다 오면 밝아지니 신랑의 얼굴도 편안해졌다. 혼자 밥 먹기 싫으면 카페에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면 된다.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면 되었다. 친정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연령 때가 비슷한 어르신을 만나보니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동네 주차장 옆 폐가가 공사를 마치고 한옥스테이를 개업하였다. 여전히 셀프 인테리어 중이던 우리 집보다 럭셔리해 보였다. 특히 마당 수영장이 부러웠다. 하루 숙박비가 30만 원이라고 해서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전국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출장비 3만 원을 벌려고 온갖 민원을 상대하던 나는 편안동 감성한옥길에 있는 한옥매물을 보러 다녔다. 우리 부부는 아껴서 모은 10년치 월급으로 한옥스테이를 한번 해보자고 협의를 보았다. 인테리어는 전문업체를 운영하시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드렸고 갑자기 몇 개월 만에 한옥체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