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신부님을 만나다.
한옥카페 사장님은 가정폭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셔서 결혼에 대해서 환상이 없으셨다. 귀가하기 싫은 마음에 집 밖에서 신발 던지기 놀이를 자주 하셨단다. 20대에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망연하게 생각하다 종교에 관심을 두셨다.
"사장님, 성당 갔다가 바로 출근하셨나 보네요."
내년에는 유럽 성지순례를 가시려고 여행경비를 열심히 모으신다. 나이가 많으셔서 마지막 해외여행일 수 있을 것이다. 카페 영업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마음이다. 평소에 식단, 운동 등 자기 관리를 잘하시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편안동 감성한옥길에는 작은 성당이 있는데, 산책길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된다. 동상에 적힌 소박하게 살고 서로 나누며, 기쁘고 떳떳하게 삶의 터전을 이룬다는 말씀에 나를 반성하게 된다. 적게 소비하는지, 기부와 봉사를 하는지, 세상의 잣대가 아닌 내 인생을를 사는지 보게 된다. 아빠가 지어준 이름처럼 착하고 기쁘게 살고 싶다.
"사장님, 천주교 신자를 언제 시작하셨어요? 계기가 있으실 것 같아서요."
1970년대 대한민국 여기저기 실크공장이 많았는데 카페 사장님도 공순이 생활을 하셨단다. 월급을 거의 집으로 보내면 돈이 없어 기숙사에만 계셨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대전성당에 가 보았는데 신부님이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고. 추운겨울 바닥이 차갑다고 이불을 깔아주시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셨다.
결혼 정년기에 수녀가 되고 싶으셨는데 고등학교 졸업이 자격요건이라 자포자기하셨다. 서울 수녀회에는 초등학교 졸업만 해도 수녀가 될 수 있으나, 아버지 도장을 받아와야 했다. 자식와 마누라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아버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면 집안이 난리가 날 것 같아 끝내 포기하셨다.
"사장님, 연예를 한 번도 안 해 보신 거예요? 첫사랑은요?"
잠깐 추억에 잠기시더니 연예 비슷한 것을 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내가 듣기에는 그냥 자원봉사 활동하고 커피숍에서 차 한잔 마신 건데. 어리둥절했지만 좋았던 기억을 지켜드리고 싶어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대전성당에서 여자친구가 있고 음악을 사랑하던 형제 한분이 30대에 신학대학을 가셨단다. 수녀가 되고 싶으셨던 카페 사장님은 결혼하시고, 반면에 아무 생각 없던 분이 신부님이 되셨다니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예비사제가 되셨다는 소식에 편지를 보냈는데 연애편지로 오해받아 작은 소동이 있었단다.
"사장님, 수녀님이 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래도 딸내미들이 있잖아요."
따님 대학 장학금을 위하여 수녀원에 조리사로 출퇴근하면서 거의 수녀님으로 사신 것 같았다. 거기에서 외국인 수녀님, 고지식한 수녀님, 이제 막 수녀님이 된 분과 지내시면서 한풀이를 조금 하셨단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켜서 정말 감사하다고 하셨다.
남편분은 장남으로 집안에서 귀하게 대접을 받으신 분 같았다. 그래도 결혼생활은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을 바꿀 수는 없었다고 하셨다. 너무 순진하고 바보였다고. 오랫동안 착한 병에 걸려서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사장님, 요즘 결혼은 선택이에요. 저는 완벽한 사람은 결혼제도가 필요 없다고 보아요."
우리 부부를 잘 아시는 사장님은 나에게 결혼을 잘했다며, 잉꼬부부라고 하셨다. 신혼생활을 모르시니깐. 청소, 빨래, 요리뿐만 아니라 취미활동, 가족행사, 가계 지출비까지 끊임없이 다투었다. 10년 차 결혼생활동안 시아버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옥스테이 동업을 하면서 이제서야 신랑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