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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Feb 09. 2023

입맛 살려주는 냉잇국

아. 역시.

항상 둘째가 감기에 걸리면 어김없이 다음날이면 증상이 나타난다. 새벽부터 이상하게 목이 간질간질하고 기침이 난다. 비염은 심해져 코가 막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둘째도 코가 많이 막혔는지 새벽 4시에 깨서 앉아 있는다. 급하게 일어나 가습기를 켰다. 어젯밤 켜놓고 잤으면 좀 나았을걸 사소한 것도 신경 쓰기 싫은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 나은 것 같더니 다시 기침이 나온다.

"엄마. 얼른 병원 가요."

"그래야겠지" 참아보려 했지만 안될 것 같다. 더 심해지기 전에 약에 힘을 빌려야 내 몸이 성할 것 같다.




둘째가 5살 그 해 독감은 독했다. 유치원 겨울방학과 함께 시작된 둘째 독감은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우린 항상 한쌍이었다. 예방접종을 한 둘째는 독감이어도 약을 먹으니 열도 바로 떨어지고 금방 컨디션이 회복됐다. 문제는 면역력 약하고 감기만 걸려도 힘들어하는 체력 약한 내가 문제였다. 온몸은 어디서 두들겨 맞았는지 밤새 힘들어 잠도 못 자고 열은 39도 이상이었다. 병원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약을 먹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한 발 한 발 움직여 진료를 보고 약을 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액이라도 좀 맞고 왔으면 나았을 것인데 그때는 그런 것도 다 귀찮고 힘들어 집에서 누워 있고만 싶었다. 약 먹고 자고 약 먹고 자고. 타미플루를 복용하는 5일 동안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 같았다. 약을 먹어야 하니 매 끼니 챙겨 먹는 거 또한 곤혹스러웠다. 아침 점심은 큰애의 도움으로 겨우 밥 몇 숟가락 먹고 저녁은 남편 찬스를 썼다. 그런데 말이 좋아 찬스지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신랑은 며칠 동안 치킨을 주문했다. 독감으로 입맛도 없는데 치킨은 무슨 맛이 있었겠는가? 짜고 딱딱한 거친 조각들이 입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 난 한동안 치킨을 먹지 않았다. 그때 먹었던 치킨들은 지금도 주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랑한테 지금도 얘기한다. 아플 때는 하얀 쌀밥에 뜨끈한 국물을 먹어야 기운이 나지 치킨은 먹는 게 아니라고.          








어릴 적 엄마가 매운탕 안에 들어 있는 오만둥이를 드실 때마다 신기했다. 작은 멍게처럼 생긴 것도 같고, 울퉁불퉁한 홈이나 주름이 있어서 돌멩이 같기도 했다. 엄마가 그걸 입안에 넣고 톡 터뜨려 드시는 걸 보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침이 고였다. 희한하게 생긴 이 녀석을 내 입에는 넣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지는 않지만 맛은 너무 궁금했다. 엄마한테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엄마는 바다향이 난다고 하셨다. 어릴 땐 몰랐다. 바다향이 어떤 맛인지. 바다향도 몰랐던 그 어린아이가 어느새 지금은 엄마가 되어 내 아이한테 똑같이 말하고 있다.

"엄마 무슨 맛이야?"

"응. 바다향이 나는 맛이야."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니 어렸을 적 엄마가 말한 향 나는 음식들이 생각난다. 냉이, 쑥, 미나리, 쑥갓, 달래, 고들빼기, 취나물, 참나물, 두릅... 지금은 내가 즐겨 먹는 먹거리가 되었다.

오늘처럼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뭔가 입맛을 돋우어야 에너지가 생길 것 같은 날은 특히 더 생각난다. 어플을 연다. 이런 날은 나에게는 찬스다. 군침 도는 음식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짜장면, 갈비, 족발, 떡볶이, 샤브샤브, 치킨, 피자... 없는 음식이 없다. 음식들이 하나같이 맛있어 보이지만 선뜻 누르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이런 음식이 아닌 하얀 쌀밥에 뜨끈한 국이 먹고 싶다. 핸드폰을 끄고 냉장고로 향한다.



와~ 찾았다.
저녁 메뉴는 냉잇국!!


칼로 잔뿌리를 제거해 주니 향이 더 향긋해졌다. 향만 맡아도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냉이는 특유의 향긋한 향이 좋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아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식재료이다.

재료 : 쌀뜨물, 멸치, 다시마, 냉이, 된장, 김치

냉이손질법 : 냉이 잔뿌리를 제거해 주고, 누런 잎은 떼준다. 30분 정도 물에 담가 놓았다가 깨끗이 씻어서 손질한다.(물에 담가 놓을 시간이 없으면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사용해도 된다.)

조리법 : 쌀뜨물에 멸치,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내고 된장 한 스푼, 김치, 냉이를 넣고 끓이면 완성.

* 우리 집은 냉잇국에 꼭 김치를 넣어 끓인다. 약간 칼칼하면서 된장의 구수함과 냉이의 향긋한 맛이 아주 일품이다. 김치를 넣어 다른 양념을 넣지 않아도 맛이 좋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예요."

"응. 쌀밥에 냉잇국."

"엄마. 나 아프다고 쌀밥 한 거예요.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냄비 밥으로요."

"그럼. 얼른 먹고 나아야 토요일에 한자 시험도 합격하지."

쌀밥을 좋아하는 둘째는 환하게 웃고 있다.




누군가가 소박하게 내어주는 밥상을 받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특히 오늘처럼 컨디션 안 좋은 날은 더욱 그립고 간절하다. 내 손으로 차린 밥상이지만 맛있다. 흰쌀밥에 구수함도 좋고 냉이의 향긋함도 좋다. 밥 한 끼 기분 좋게 먹으니 힘이 난다. 역시 사람은 밥심이다.

아. 내일은 또 뭐 먹지? 생각하니 갑자기 도다리 쑥국이 먹고 싶다. 도다리 쑥국이 먹고 싶은 건 애들 방학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나의 간절함이 녹아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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