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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Feb 02. 2023

너의 취미생활을 존중할게

존중하다(높이어 귀중하게 대하다.)


하루 중 엄마인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 

'엄마 뭐 먹어요.' 

매끼 뭔가 특별한 건 없어도 아이들은 의례 나에게 묻는다.

그날 저녁도 우린 뭔가 특별한 음식은 없지만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기말고사를 몇 주 앞두고 있는 아들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밝으면서도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엄마. 저요. 방학에 기타 배우고 싶어요."

"엥. 뭐라고? 기타?"    

"왜 갑자기? 이번 기말고사 끝나면 수학 학원 알아봐야지. 너 이제 중3이야. 다른 애들은 특강이다 뭐다 알아보는데 기타 학원."

"그럼 너 전교 10등 안에 들면 등록해줄게." 내 입으로 나온 말이지만 정말 유치하다.

"엄마. 취미 생활도 성적으로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핸드폰 보고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니잖아요. 제가 할 일은 알아서 하고 있잖아요."

아이 말을 듣고 있는 내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아이의 말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럴 땐 나만의 회피방법을 써야 한다.

 "그래 생각해 보자. 엄마도 한번 생각해 볼게."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마치 바람 잔뜩 넣은 풍선 같았다. 항상 기분이 좋고 뭔가 붕~ 떠있는 아이 같았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는 난 걱정됐다.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금세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가 여름방학이 되자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 피아노를 사달라고 하던 아이였다. 피아노 학원이라도 몇 달 다니면서 배워보자고 했지만 아이는 피아노어플과 유튜브를 보며 배우면 된다고 무조건 피아노만 사달라고 했다. 그렇게 몇 달을 연습하던 아이는 제법 그럴싸한 곡들을 연주했다. 악보도 잘 보지 못하는 나는 아이가 신기했다. 가끔 아침에 눈뜨면 피아노로 가서 캐논변주곡을 연주해 주었다.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들의 피아노 연주에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 음악이 주는 삶의 풍요로움을 알기에 피아노 학원을 안 보내줄 수 없었다. 우린 딱 6개월만 다녀보자고 약속하고 학원 등록을 하러 갔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연주할 수 있는 거 해보라고 하셨다. 연주가 끝나자 선생님은 한참을 웃으셨다. 손가락이 다 틀렸는데 연주가 된다며 신기하고 재밌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노 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공부 시간은 줄어들었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라 시험도 없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의 학업을 평가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첫 시험을 열흘 앞두고 아이는 코로나에 걸렸다. 격리기간 일주일을 보내고 학교에 간 아이는 며칠 후 중간고사를 치렀다.  중학교 엄마들은 푹신한 매트리스를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첫 성적표는 푹신한 매트리스 옆에서 봐야 성적에 충격받고 쓰러져도 안전하다고. 그 말이 내 말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아이도 적잖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난 당장 피아노 학원을 끊자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녹턴연주곡을 끝까지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아이는 녹턴연주곡을 마무리하고 피아노 학원과 작별했다. 








하루 종일 머리가 복잡했다. 어제 일이 미안하긴 하지만 나도 엄마이다 보니 아이 공부에 욕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아이가 원하니 학원을 등록해주기로 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고심하던 중 문화센터가 생각났다. 가격도 저렴하고 주 1회 토요일 수업이니 공부에 방해도 주지 않을 것 같아 당장 등록했다. 

"방학 동안 문화센터 다녀보는 거 어때? 주 1회 토요일 수업이야"

"엄마. 등록하셨어요. 저야 좋지요." 아이는 얼굴이 환해지며 큰 미소를 짓는다.

"대신 이번 기말고사 마무리 잘해. 네가 혼자 해본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잘해봐."




아이 기타 학원등록을 빌미로 수학학원 카드를 살며시 내밀었다. 아이도 예비중 3이라는 무게감을 느꼈나 보다. 방학 동안 집-학원-독서실을 오가며 보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주말마다 문화센터도 다니고 있고, 매일 자기 방에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뻐꾸기'를 시작으로 했던 아이는 이제 다양한 음악들을 연주한다. 기타는 코드만 알면 간단하게 몇 곡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Never mind, I'll find someone like you
I wish nothing but the best fo you, too
Don't for get me I beg
I remember you said
sometimes it lasts in love
But sometimes it hurts instead

 Adele-someone like you


허스키한 톤에 그녀만의 매력적인 소울이 느껴지는 이곡을 굵은 톤에 사춘기 특유의 매력을 가진 아이의 목소리로 듣고 있다. 

"엄마. 잘 들어보세요. 어때요." 내가 듣기엔 다 똑같은 거 같은데 아이는 매번 다르다고 한다.

"응. 멋지다.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네" 아이의 말에 긍정적인 표현은 해줘야 한다.

"엄마. 나 방학 동안 기타 배우길 진짜 잘한 거 같아요. 요즘 기타 연주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아이의 행복한 시간들을 내 욕심에 빼앗을 뻔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아이는 지금 건강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니 아직 사춘기가 안 왔을지도 모른다. 몇 년 후 진짜 무서운 사춘기가 올 수도 있다. 다행인 건 아이에 이런 행복한 시간들이 쌓여서 자신의 내면의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면의 힘이 생기면 사춘기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며 힘든 시간이 찾아왔을 때도 아이는 별 탈 없이 잘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아들 너의 취미생활을 존중할게
엄마는 언제나 널 응원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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