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무거웠고 지금은 가벼웠다.
고요하고 어두운 새벽 5시. 알람을 끄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일어난다.
나를 알아보러 가는 날.
6시 16분 용산으로 가는 ktx를 탔다. 이른 시간이지만 새 학기 준비하러 가는 학생들인지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눈에 자주 보인다. 표정 속에 설렘과 긴장감이 엿보인다. 나 역시 그들 속에 긴장된 표정으로 꼿꼿이 자리에 앉았다. 창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편안함을 찾고 싶어서일까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본다.
제목 : 페퍼민트의 작은 마법
자렛은 허브 마녀 토파즈의 유산을 물려받은 소녀다. 내가 자렛에게 약을 좀 사야겠다.
무슨 약이냐면 화가 안나는 약이다.
그 약을 사서 엄마에게 드리면
엄마가 화를 안 내겠지.
작년 여름.
둘째 독서기록장을 보았다. 아이의 글을 읽는 순간 웃음도 나오고 내가 아이 눈에 이렇게 비쳤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분명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짜증이 많아지고 성격이 조급해지고 애들한테 화를 자주 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40대 중반이 되어가니 갱년기 증상들이 오려고 그러는 걸까 생각했지 내 몸에 이상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밤에 자려고 누우면 왼쪽 아랫배가 통증이 한 번씩 찾아왔다. 배란통인가 하고 몇 달을 지켜보았다. 점점 묵직한 게 만져지는 것 같다. 1월에 자궁경부암 검사랑 초음파까지 진료를 다 봤는데 몇 달 사이에 이상이 생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병원을 찾았다.
"1월에 진료 다 봤는데 무슨 증상이 있어서 왔어?" 큰아이 출산 때부터 봐주신 선생님은 친근하게 물어보신다.
"배에 뭐가 만져져서 왔어요."
"1월에 아무 이상 없었는데 뭐가 만져져. 한번 보지 뭐."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하신다.
"어. 난소낭종으로 자궁내막증이 생겼네. 크기도 꽤 크고. 8cm 정도 되네." 선생님도 당황하신 목소리다.
크기도 꽤 크고 난소도 하나인 나의 상태를 아는 선생님은 우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그 병은 날 잊지 못하고 2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남편과 상의 끝에 이번에 경화술로 시술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회복도 빠르고 난소도 보존할 수 있는 시술이 있는데 왜 수술을 하려고 하냐며 한번 해보고 안되면 그때 수술해도 늦지 않다고 날 설득했다. 교수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얻고 날짜도 바로 잡아주셔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시술하고 2박 3일 입원하며 경과를 보고 퇴원했다. 시술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막상 모든 걸 진행하고 나니 걱정거리도 아닌 걸 걱정한 꼴이었다. 시술하고 나니 통증도 없어지고 빠졌던 살도 원래 몸무게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지건 조급해지던 성격도 좀 나아지고 주체할 수 없었던 화도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병원.
피검사,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교수님과 상담할 시간을 기다린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애들아 1기 단체톡에서 요즘 핫한 확언일기를 마음속으로 쓴다.
'난 다 나았다. 이제 괜찮다.'
'난 다 나았다. 이제 괜찮다'
'난 다 나았다. 이제 괜찮다'
"잘 지냈어요?" 교수님 밝은 목소리와 미소 띤 얼굴만 보고도 내 결과가 보인다.
"네. 잘 지냈어요."
"이제 나 안 봐도 되겠어요. 다 좋아졌네요."
확언일기의 긍정의 힘이 발휘된 걸까? 마스크 속으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편안함이 찾아오니 복잡한 신촌거리, 독립문, 경찰청, 서울역등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 어디예요."
"진료 다 봤어요? 뭐래요?"
"응 엄마 괜찮대. 이제 가는 길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엄마 보고 싶어요. 빨리 오세요."
잠시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은 11살 귀엽고 사랑 넘치는 딸이다.
*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