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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r 03. 2023

엄마도 잔소리가 필요해.

3월 2일 드디어 개학이다.

새해 첫날보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6시 30분에 눈이 떠진다. 내가 개학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몸단장에 시간이 휘리릭 지나간다. 둘째 역시 첫날이라 설레는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났다. 방학 동안 늦잠 자던 오빠가 걱정되는 건지 시키지 않아도 조용히 오빠를 깨우러 간다. 최대한 오늘 아침은 기분 좋게 아이들을 보내야 한다. 잔소리는 줄이고 목소리는 최대한 부드럽게 아이들에게 말한다. 모든 게 순조롭다. 큰아이 버스 시간에 맞춰 우리 셋은 같이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우리 아들. 드디어 중3이네. 첫날 잘 보내고 와."

"네." 무덤덤한 말투 속에 아이의 설렘, 기대, 걱정이 느껴진다.

둘째는 학교 앞에 내려줬다.

"우리 딸. 초4 된 거 축하해. 첫날 재미있게 보내고 와"

"네~~" 집에서 보다 한층 목소리가 올라가고 에너지가 넘친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모든 게 완벽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나도 모르는 기분 좋음에 환하게 미소가 생긴다. 두 팔 벌려 잡히지 않는 공기를 손에 쥐고 부드럽게 몇 바퀴 돌아본다. 보는 이 없는 혼자만의 춤사위에 절로 웃음이 난다.

'오늘은 나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마음속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합리화한다.

'오늘 브런치 발행하는 날인데 그것도 이번주 쉬어야지. 뭐 내가 한 주 쉰다고 누가 알겠어. 그리고 애들 방학 동안 고생했으니 나에게 보상의 시간도 필요한 거지.'

커피 한잔을 타서 그동안 듣고 싶었던 라디오를 켰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이모부 나오는 날. 너무너무 듣고 싶었던 코너이다. 매주 목요일하는 코너인데 작년에 문화센터 수업이 있어서  들을 수 없었고, 수업이 끝나니 애들 방학이 시작되어 그 시간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가벼운 라떼 테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제시어를 듣고 다음 말을 이어주세요.

여명의   눈동자
한지붕   세가족
전원      일기

어제일은 잊어도 과거일은 기억하는 라떼는 말이야~~

 

두 진행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추억여행을 하고 온 듯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방학 동안 참 길게 느껴졌던 시간들이 오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애들 하교시간이다.






"엄마. 오늘 목요일 아니에요."

"응. 맞아."

"오늘 글 발행했어요."

"아니. 이번주 한 주 쉬려고.  너희들 개학 준비한다고 이번주 시간도 없었고, 엄마도 뭔가 오늘은 좀 쉬고 싶었어." 아들의 물음에 미리 준비한 답변을 술술 얘기하는데 자꾸만 말 끝이 흐려진다.



 뭐든 꾸준함이 중요해.
오늘 숙제 못한 거 있으면
내일 아침에라도 하면 되는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둘째한테 했던 말들을 나한테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꾸준함히 중요하다며 성실함을 바랐던 나.

그날 숙제는 그날 끝낼 수 있는 끈기를 바랐던 나.

다 하지 못한 숙제는 다음날이라도 할 수 있는 열정을 바랐던 나.


"엄마. 그래요. 이번주는 충전하고 다음 주엔 뭔가 더 근사한 글을 발행하면 되겠네요."

역시 아빠 닮아서 잔소리가 없는 아들은 나를 응원하듯 말한다.

'아들아. 아니야. 엄마가 지금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야'

'엄마. 발행하기로 하신 약속은 지키셔야죠. 그날 할 일은 그날 끝내라고 잔소리하시잖아요. 어른인 엄마가 모범을 보이셔야죠.'


 엄마도 잔소리가 필요해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이 책과 만난 이상, 당분간 매일 제가 맞은편에 앉아 낮고 고운 목소리로 자분자분 잔소리를 늘어놓겠습니다. 어릴 때는 일기 안 쓰냐는 잔소리를 듣기만 하면, 쓰기 싫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에 당장이라도 호흡이 멈출 것 같더니 언제부턴가 누군가의 잔소리가 아쉽더군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이제 그리운 그 잔소리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 오후의 글쓰기中(이은경) -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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