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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Dec 22. 2022

오늘만 기다렸어...

기억하다(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다)

아침부터 문자가 계속 온다.

7시, 8시, 10시, 13시 30분...

많은 눈이 예상되오니 낙상 및 미끄럼 사고에 주의하시고 도로 결빙에 따른 감속운행등 안전사고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문자만  9개

아침부터 조금씩 내리던 눈은 오후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카톡~

우리 만두 몇 시쯤 만들까? 오늘만 기다렸어... 먹고 싶어서ㅎㅎ

우리 언니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모두가 좋아하는 라면, 국수뿐만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짜장면 또한 언니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건 집에서 만든 만두다.


"언니. 눈이 넘 많이 오고 있어."

"응. 그러게. 오늘은 못 만들겠지."

언니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말투다.

"응. 눈이 이리 많이 오는데 운전하기 힘들지. 그럼 내일 만들까?"

"그래. 어쩔 수 없지. 눈이 왜 이리 많이 와... 내일은 만들 수 있겠지." 

오늘만 기다렸다는 언니는 내일을 기약하며 마음을 달랬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은 눈으로 덮여 있고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 지역은 17.5cm라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눈이 이렇게 쌓이면 누가 제일 신나 할까? 맞다.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 둘째. 어제도 실컷 나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왔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직 온 세상이 겨울왕국이다. 둘째는 마치 엘사가 된 것 마냥 신나 보였다. 얼른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가자고 재촉한다.


"뭐 해?"

"우리 지금 만두 만들까?"

"어. 눈이 이리 많이 왔는데 언니 올 수 있어?"

"어. 형부가 태워다 준다고 했어." 우리 언니 진짜 만두가 먹고 싶었나 보다. 난 언니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나 바로 챙기고 갈게."


"여보. 언니 전화 왔어. 만두가 진짜 먹고 싶었나 봐. 둘이 눈썰매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고 올 수 있지?"






  초등학교 때까지 큰 이모네와 우리 가족은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 그래서 다 같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일 자주 있었다. 특히 이 계절 빼놓을 수 없는 건 두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는 일이었다.

이모, 사촌언니, 엄마, 우리 4 자매는 빙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만두피는 사촌언니와 엄마가 담당하고 우리는 작은 손으로 만두피를 꾹꾹 눌러 가며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었던 것 같다. 동그란 갈색으로 된 큰 상 2개를 꽉 채울 정도는 만들었으니 그 숫자를 따져보면 200개는 족히 될 양인 것 같다. 그땐 만두 빚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마냥 행복했다.


중학교 입학하고 각자 이사를 했다.

우린 아빠 사업의 실패와 엄마의 투병생활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이사한 후 우린 더 이상 만두를 만들지 않았다.






  난 반죽을 시작했다. 밀가루에 소금 조금과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했다. 어렸을 적 엄마가 했던 그대로를 기억하며. 

익반죽을 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반죽이 쉽다. 많은 양을 하더라도 반죽이 잘되고 부드러워 만두피를 만들기 쉽다. 또 군만두를 하면 반죽이 쫄깃쫄깃하고 만둣국을 끓이면 오래 끓이지 않아도 돼서 만두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또 남은 만두를 냉동에 얼려 보관할 때도 만두 피기 갈라지지 않아 맛과 모양이 그대로다.  

다음은 속재료 준비다. 언니랑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는 김치, 당면, 두부, 고기를 넣고  

애들이 좋아하는 고기만두는 고기, 두부, 당면, 부추, 참기름을 넣어 만든다. 여기 우리 집만의 만두 비결은 고기를 익혀서 넣는 것이다. 그러면 만두를 먹을 때 고기가 탱글탱글하게 씹히고 고기의 고소한 맛이 배가 된다. 그런데 단점이 있다. 만두를 만들기 전부터 애들이 속재료를 한 접시씩 떠가서 먹는다는 점. 오늘도 두 아이는 어느새 한 접시씩 떠가서 먹고 있다.

"엄마. 오늘도 맛있는 대요."

"애들아. 그만 먹어. 금방 만들어서 줄게. 너희가 먹은 게 둘이 합쳐 10개는 되겠다."

"맛있는 걸 어떻게요. 히히히." 둘째의 애교 섞인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속재료를 한입씩 떠먹으며 마냥 좋아하던 나. 

만두를 빚으며 내가 잘 만들었다고 우기던 나.

하하 호호 떠들며 마냥 행복해하던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환한 미소. 

그렇게 난 오늘도 엄마를 기억했다.


"아휴. 만두 만드는 게 보통일이 아니야."

"맞아. 벌써 3시간이나 지났어."

"언니 얼른 챙겨.  가서 애들 구워주고 저녁에 만둣국 끓여서 먹어."

"우리도 저녁엔 만둣국 먹어야지."

"어우. 생각만 해도 군침 돈다. 뜨끈하고 진한 멸치 육수에 만둣국 끓여서 먹으면 눈 녹듯이 입안에서 만두가 다 녹아버릴 것 같아. 난 만둣국이 너무 맛있어." 언니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집에서 만든 만두피라 모양이 일정하지 않지만 쫄깃한 맛이 일품인 만두





"엄마. 오늘 간식은 뭐예요?"

"만두 구워줄까?"

"네. 좋아요?"

"엄마. 오늘 저녁은 뭐 먹어요." 

"음. 그러게 뭐 먹지?"

"엄마. 만둣국 먹어요."

"어? 만둣국? 어제 먹었는데 또 먹어. 안돼. 저녁엔 다른 거 먹자."


어제 먹은 만둣국이 또 먹고 싶다는 둘째.

우리 딸도 나와 함께 만두 만들며 행복하던 시간들을 기억하겠지. 

우리들이 웃고 떠들며 행복하던 모습.

40대의 내 모습.

그리도 우리들의 지금 이 시간들.  

 둘째가 매일 먹고 싶다는 멸치와 다시마 육수로 끓인 만둣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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