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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Jan 19. 2023

발가락도 닮았다

닮다(사람 또는 사물이 서로 비슷한 생김새나 성질을 지니다.)


3.9kg으로 태어난 둘째.  딱 눈에 보였다. 신생아실 많은 아이들 속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누구를 닮았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쌍꺼풀 없는 눈. 내가 봤을 땐 남편을 닮았는데 남편은 한사코 아니라고 한다. 누굴 닮았든 둘째는 예뻤다. 2시간에 한 번씩 깨서 목청 높여 울며 모유를 찾던 첫째와는 다르게 둘째는 4시간씩 잠을 잤고 응애응애 울며 눈물을 뚝뚝 흘리니 몸이 절로 가 안아 주었다. 어떨 땐 모유를 몇 번 빨고는 잠이 들어 아이를 깨워야 했다. 순둥이 그 자체였다. 어쩜 둘째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날 하나도 안 닮았을까. 날 안 닮았는데 난 좋았다. 날 닮으면 성격 예민하고, 까칠하고.  난 그런 날 닮은 딸을 키우기가 버거울 것 같았다. 돌 때쯤 됐을 때 소아과를 가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은 혹시 둘의 관계가 어찌 되냐고 물으셨다. 딸이라고 하니 기사님은 정색하시며 '딸이요? 어쩜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어요' 하시며 진짜 딸이냐고 되물어 보셨다. 난 딸의 얼굴을 내려봤다. 우리가 안 닮아도 그렇게 안 닮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속으로는 안도했다.

20개월쯤 둘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적응기간을 위해 일주일정도 같이 다녔다. 적응기간 마지막날 선생님은 아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시고 둘째는 누굴 닮았어요. 어머님을 하나도 안 닮았네요. 난 자주 듣는 얘기라 대수롭지 않은 듯 아빠를 닮았다고 했다. 선생님도 우리가 정말 안 닮아 보이셨나 보다. 

어느 날 남편이 일찍 퇴근하고 집에 왔다. 둘째를 하원시킨다던 남편은 둘째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날 보시더니 막 웃으시는 거야."

"왜?" 

"나랑 정말 똑같다고. 선생님이 이제야 의문이 풀리셨대. 선생님이 어찌나 호호호하고 웃으시는지 내가 민망했어."

"뭐가 민망해. 여보랑 똑같다고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잖아."

"우리가 그렇게 닮았나."

"응. 완전 붕어빵이지."  








방학식을 한 둘째는 마냥 신났다. 방학 동안 특별한 일은 없어도 그냥 방학이 좋은 초등학생이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놀고 점심도 먹고 3시까지 갈게요."  

"그래. 조심히 놀고 와" 

신나게 놀고 온 둘째를 데리어 갔다. 둘째는 차에 타자마자 몇 시간 이야기를 쉴 틈 없이 풀어냈다. 차를 타자마자 시작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친구집에 갔는데 아빠가 소화 잘 되게 퍼진 라면으로 끓여주셨다. 친구들이랑 보물찾기 하며 놀았다. 친구가 선물을 줬다. 현관 앞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문을 열고 딱 들어오는 순간. 뒤에서 '꿍' 하고 큰소리가 났다. 갑자기 큰 울음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둘째가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아이는 너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울고 있었다. 너무 신나게 놀아서 다리에 힘이 풀린 건가. 대리석에 찧었으니 얼마나 아플까. 병원 가야 하나.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우는 둘째를 달래서 소파에 앉혔다. 무릎부터 발까지 쑥 훑어보았다. 다행히 잠깐의 아픔만 있었을 뿐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상에 이게 왜 이러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둘째의 신체 비밀이 밝혀졌다.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양쪽 발가락을 계속 살펴보았다. 왼쪽발가락은 괜찮은데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유독 짧다. 새끼발가락과 같은 길이다. 지금까지 둘째는 아빠 발가락을 닮은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왼발과 오른발이 달랐다.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짧아서 아이가 한 번씩 잘 넘어지는 건가. 병원에 가봐야 하나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럼 이 문제의 오른발은 누굴 닮았을까. 난 내가 양말을 벗는 순간 알았다. 둘째 발가락과 내 발가락이 똑같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았다. 내 발가락이 이랬어.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 발가락조차 내가 알지 못했다. 

"너 알고 있었어?"

"엄마 발가락이 이렇게 생긴 거?" 나한테 물어볼 질문을 아이한테 물어봤다.

"엄마.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너 발가락 펴봐." 

우린 동시에 발가락을 같이 폈다. 왼발은 아빠를 닮아서 발가락이 펴지지 않고 오른발은 나를 닮아서 쫘악 펴지는 것이었다. 펴진 발가락을 보고 우린 둘이서 배를 그러안고 한참을 웃었다. 아이는 나를 닮은 게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오자마자 물어봤다.

"여보 알았어. 둘째 오른발 나 닮은 거"

항상 아이의 발을 주물러 주던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그럼 엄마 닮지 누굴 닮아."








M이 기관지가 조금 상한 아이를 안고 병원에 왔습니다. M은 잠시 주저하다기 그가 예비하였던 말을 마침내 꺼내었습니다.
'날 닮은 데가 있어'
M은 어린애를 왼편 팔로 가만히 옮겨서 붙안으면서, 오른손으로 제 양말을 벗었습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나는 M의 마음과 노력에 눈물겨워졌습니다.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그리고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의혹과 희망이 섞인 그의 눈을 피하면서 돌아앉았습니다.

                                                                                       - 발가락이 닮았다(김동인) -



발가락 하면 떠오르는 소설. 

의사의 말 한마디가 M에게는 한줄기 희망이었을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누군가에는 두려움을,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정해진 답이 나를 힘들게 할까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친척분들을 만나면 '어쩜 엄마랑 똑같다. 네가 엄마랑 제일 많이 닮았다.' 딸이 엄마를 닮아간다는 건 당연한 사실인데 난 그 말이 두렵게 다가왔다. 그래서 내 딸이 나를 안 닮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외모는 다를지라도 나의 모습을 아이한테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제 초등4학년이 되는 딸은 아직도 하루면 뽀뽀해 달라, 안아달라 10번 이상은 얘기한다. 그런 딸을 볼 때면 내 모습이 보여 짠하다가도 또 어떨 땐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다.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난 나는 항상 엄마 사랑을 갈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안쓰러우셨는지 엄마는 나에게 소중한 딸을 보내주셨다.



너 딸하나는 기똥차게 잘 낳아놨다.  



아빠는 나랑 통화할 때면 항상 이 말씀을 하신다.('기똥차다' 뛰어나다는 뜻으로 전라도 사투리다) 딸이 있으니 평생 친구처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하냐고 하신다. 

맞다. 엄마가 외로움 많은 나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


"우리 예쁜이 엄마 어디 닮았어?"

"나 엄마 발가락이 닮았지."

"아니 우리 예쁜이는 엄마 발가락도 닮았지. 얼굴도 똑같이 생기고" 

엄마 닮았다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딸은 내 품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딸을 꼭 안아주었다. 어렸을 적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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