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em 0. 퇴사 방지템
워라밸이 보장되던 이전 회사보다는 힘들어질 거라는 걸 예상하고 이직한 이 회사. 입사 3개월 만에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인생의 무력감마저 느끼던 차에 만나게 된 ‘풋살’ 그리고 ‘팀카카오’. 풋살이라는 팀스포츠에서 만난 모든 감정을 동시간대에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퇴사 안 하길 진짜 잘했다’ 싶을 만큼 ‘풋살’과 ‘팀카카오’에 푹 빠져 버렸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닌 움직이는 무언가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했던 게 그 해의, 아니 인생에서 잘한 선택 중 Top3에 든다.
그렇게 나는 3년이 지난 아직까지 이 회사 그리고 팀카카오에 남아 있다. 현재 회사에서 나는 사업 기획을 맡고 있고 나름의 직업병일지 몰라도 모든 생각들이 기승전‘사업’으로 이어지곤 한다. 취미로 시작한 풋살 생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item 1. 여자 풋살화 전문점
‘여자 풋살화’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결과로 나온 건 키즈, 유소년용 풋살화. “음, 이게 아닌데?” 다시 검색했다. ‘성인 여자 풋살화’ 이번에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풋살화 사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 하며 한참을 서칭했고 “찾았다!” 싶었을 땐 깔창을 깔아도 소화가 불가능한 270의 발 사이즈였다. 겨우 내 발 사이즈인 240의 풋살화를 찾았을 땐 해외 배송비에 놀랬다. 주변에 풋살 선배가 없는 입문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첫 관문이 바로 풋살화 구매하기였던 거 같다.
이때 든 생각은 ‘여자 풋살화만 모아 둔 샵은 없나?’ ‘해외에서 작은 사이즈 풋살화 직수입 해 오면 잘 팔리겠는데?’ ‘앞으로 이 시장은 수요가 많아질 텐데 탐나는 아이템이네?’였다. 매사 돈이 되는 무언가에 흥미를 얻는 사람이다 보니 첫 풋살 준비물을 챙기면서도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item 2. 여자 풋살 커뮤니티 앱
한두달 먼저 시작한 팀원에게 풋살 첫 시작 축하 겸 논슬립 양말을 선물 받았다. 지금은 옷장 속 넘쳐 나는 풋살 양말들이지만 그땐 논슬립 양말이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새로웠다. 그 뒤로 논슬립만 보면 사들였는데 바닥 기능이 금방 해진다거나 너무 길어서 허벅지까지 올라온다거나 등의 구매 실패를 자주 경험했다.
또 문득 든 생각은 앞서 같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선배(?)들의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커뮤니티 앱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업체 논슬립 양말이 좋더라”, “이 풋살화는 발이 작게 나왔더라”라던가 더 나아가서는 코치를 구한다거나, 용병을 구한다거나 하는 풋살하는 여자들이 한 곳에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종합 커뮤니티 서비스를 기대해 봤다.(보통은 카페를 통해 알음알음 알아보는 것 같다) 팀카카오 내 개발자이신 분이 ‘사이드잡으로 앱 만들고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기획만 제대로 하고 개발자까지 구하면 내가 원하는 앱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미 상상 속 앱에 item1 풋살화 전문점 광고 링크도 게재할 생각까지 했다.(그렇다 나는 극강의 N이다.) 아마 내가 저때 시작했으면 지금의 플랩처럼 될 수 있었을라나 싶다.
item 3. 풋살장
“이럴 거면 우리가 돈 모아서 이 풋살장 사자.”
원하는 시간대의 풋살장 대여하기가 어려웠을 때 우리끼리 우스겟소리로 햇던 얘기다.(나는 사실 진심이었다) 풋살을 시작하고 기본기 배울 때는 나 혼자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구장 컨디션은 좋지 않지만 무료라는 이유로 매 월 어렵게 지자체 풋살장 티켓팅을 하는 걸 보며, 팀카카오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특히 비 오고 눈 올 때는 실내 풋살장이 너무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진지하게 사업을 고민한 게 ‘풋살장’이었다. 오전에는 내 개인 연습을 하고, 매주 저녁 정기적으로 팀카카오 훈련하고, 그 외 시간에는 공간 대여해 주면 완전 가동률 높게 운영할 수 있겠는데? 라는 희망 회로를 돌렸다. 풋살장 설치비, 고정비, 변동비, 객단가, 수익률, 타깃, 위치, 법적 이슈 등등 검토해 봤다. 부동산 매물도 찾아보고, 실제 사업자 인터뷰도 해 가며 ‘풋살장 사업’에 한 발짝 정도 다가갔다. 다양한 형태의 풋살장을 다녀 보며 개인적으론 주차 공간 넓은 창고형 풋살장을 가장 선호했었는데, 부지를 체육 시설로 용도 변경해야 하고 그러면 땅 주인들이 비선호한다 등의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접근성 좋은 지하 실내 구장으로 좁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수익성 측면에서 ‘아카데미 운영 필수’라는 사실에 살짝 멈칫했다. 나는 공간 대여가 하고 싶지 사람 관리까지는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아직 현생이 판교에 갇혀 있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우선은 홀딩된 상태이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게 내 notion에 ‘풋살장 가 보자고’라는 의지 가득한 제목의 글로 남겨져 있다.
item 4. 풋살장 자판기
한여름에 경기 15분 뛰고 잔디에 뒀던 음료수 마셔 봤으려나. 최악이다. 집에서 얼음물 챙겨 오는 걸 자주 까먹기도 하고 편의점에 들러서 음료수를 사 오는것도 상당히 번거롭다. 미지근한 음료수를 마시며 든 생각은 풋살장에 자판기 하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나만 까먹고 안 챙겨 오는 거 아니잖아? 다들 시원한 음료수를 먹고 싶어 할 거잖아?. 그래서 바로 ‘자판기 사업’ 검색. 그렇게 미지근한 음료수를 마신 지 일주일 만에 난 자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위치는 매주 훈련하러 가는 판교 근처 풋살장. 근처 편의점은 도보로 이동하기에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딱이었다. 풋살장 유저는 열 살 미만 아이들부터 성인들까지 다양했고 월 유저 수도 많은 편이였다. 바로 풋살장 대표님께 미팅을 요청드렸고 기획서 한 장 만들어서 갔다. “풋살장의 편의 시설 부족을 보완하여 유저들의 사용성을 높여 주고 수익 쉐어를 통해 부가 수익을 얻어 가실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 타겟의 음료로 구성하겠다.”는 말들로 협상을 시도했고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냈다. 사업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깔끔한 처음과 끝을 위해 계약서까지 만들어서 싸인까지 완료! 자판기를 설치하고 나서 한동안 팀카카오 사람들이 음료수 뽑을 때마다 인증 사진을 찍어 보내곤 했었다. 성원에 힘입어 우리팀 사람들이 운동 끝나고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를 자판기에 넣어 보려고 조사를 해 봤다. 그건 바로 ‘무알콜 맥주’. 법령을 찾아 가며 진심으로 준비해 봤지만 아이들이 많은 풋살장이라 드롭됐다. 여전히 아쉽다. 매출 제일 잘 나왔을 텐데. 이제 두 번째 자판기는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 새로운 풋살장 갈 때마다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다.
item 5. 축구 심판
뜬금없게도 ‘올해는 자격증 하나 취득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자격증이 좋을까. 우선 수익이 창출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것. 고민을 좁혀 가다 보니 자격증, 수익, 관심사 삼 박자에 딱 맞는 건 ‘축구 심판’이었다. 풋살이랑 축구는 뛰는 인원도 다르고 룰도 다르다. 11:11 축구는 실제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점이 풋살이랑 다를까 하고 항상 궁금증만 가지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풋살이 아닌 축구 룰도 제대로 익히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바로 ‘심판 자격증 코스’ 신청!
사실 신청하기 전에 공증된 자격을 받고 ‘일’을 하는 거니까 페이는 어떨지 먼저 검색해 봤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심판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그 말은 즉슨 고정적이지 않고 높지 않은 페이라는 것. 그래도 희망하는 일자에 출전할 수 있고 나이 제한도 거의 없어서 부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은퇴하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긴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축구 심판 자격증 코스는 1년에 두 번 정도 각 지역에서 진행되며, 이론 강의/필기 시험/체력 테스트/실전 훈련을 총 4일간 진행한다. 관건은 체력 테스트이다. 여성, 남성 기준은 다르며 스프린트와 인터벌 테스트가 있고 탈락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게 스프린트 테스트이다. 40m, 7.2초, 6회를 연속으로 뛰어야 한다. 팀카카오에서 가장 느린(?) 축에 속해 있다 보니 심히 걱정이 돼서 테스트 전날까지도 트랙에서 엄청 연습을 했다. 연습한 덕분인지 문제 없이 붙었고 그렇게 나는 대한 축구 협회 5급 축구 심판이 되었다.
테스트 당일 100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고 여성 심판은 열세 명 정도였다. 엄청 적구나 싶었는데,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지원자라고 들은 거 같다. 아직은 여성이 현저히 적은 집단이다. 풋살을 시작하고 여자가 풋살을 한다는 것에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접했던 것은 3년 차가 되어 가며 익숙해졌는데, 심판을 시작하면서 또 다시 겪고 있다, 하하하.
현재 간헐적으로 출전해서 심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유소년, 여고생, 20~30대 남성, 50대 남성 등이 선수이다 보니 내가 항상 겪어 오던 성인 여성들의 경기와 차이가 커서 여러모로 새롭다.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다. 하루 온종일 할애해야 하고 감정 소비도 심한 직업이다. 멘탈 강화 훈련이 필요하다면 심판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멘탈이 레벨+1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풋살을 열심히 하고 즐기기도 바쁘지만 그 안에서 파생시킬 수 있는 가치를 찾는게 나는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결합은 언제나 옳다. 그게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더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