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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원 Sep 04. 2024

에어컨 빵빵, 다음 달 전기세 걱정 되네.

일상에 도움이 되는 기업분석

"어제 우리 집에 정전났어!"

"오늘 우리 학교 정전나서 화장실 물이 안 내려갔어요!"

전기가 공기처럼 소비되는 시대에도, 대기전력 부족 사태가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공기업 H사에서 송배전을 독점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가 점등된 때는 1887년, 장소는 경복궁 건청궁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1898년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었다.


1954년생인 우리 엄마는 어린시절 호롱불을 들고 다녔다. 전기가 집으로 들어온 것은 중학교 때인 1960년대 후반이라고 한다. 국민들이 전기를 공급받는데 왜 70년이나 걸렸을까? 한성전기회사의 소유권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넘어갔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전기 공급은 더 늦어졌다. 


한성전기회사는 고종황제 시절 설립된 회사이다. 그런데 기술력이 부족해서 미국인들과 도급계약을 맺었다. 회사는 공사비용을 상환하지 못해, 담보로 제공했던 소유권을 넘겨야 했다. 그 후 1909년 미국은 일본의 국책회사에 지분을 매도한다.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친 뒤,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가 비로소 발족되었다. 전기사업법이 공포되고, 전원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1970년 후반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고 그때부터 전력량이 크게 늘었다.


발전소 건설과 송배전망 구축은 조 단위 투자가 끊임없이 들어가,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1980년 12월 H사 설립근거 공사법이 공포된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H사가 비로소 공사가 되었다. 해당 공사법은 다른 공기업에 비해서 파격적인 정부지원을 약속한다. 발행하는 사채의 원리금을 대한민국정부가 보장할 수 있고, 자본금은 정부가 51퍼센트를 출자한다. 이 때문에 H사는 현재 한국국가등급과 같은 신용등급으로 해외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한 회사가 미수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력을 만드는 비용이 몇 배로 늘었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전쟁이 어떻게 영향을 준 것일까?


유럽은 러시아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에서 가스를 수입한다. 그런데, 유럽이 러시아가 전쟁을 그만하게 하기 위해서, 러시아를 국제결제시장인 SWIFT에서 배제하는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파이프를 잠가 버렸다. 유럽은 아시아에서 가스를 사와야 했고, 아시아 가스 가격이 급등하였다. 한전 역시 엄청나게 오른 가스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그 해 겨울 유럽에서는 에너지 대란으로, 추워서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높은 비용은 가정집에 전가되어 엄청나게 오른 전기세를 지불해야 했다.  

유럽 에너지 대란

같은 시기,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전기세가 오르지 않았고, 에너지가 부족하지도 않았다. 이런 일을 한 것이 H사이다. 높은 연료비를 지불하고도, 가정이나 기업에는 전기세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10조원이 넘는 미수금을 보유하고 있다. 임직원들은 보너스를 반납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기업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기세를 비용에 연동시키는 것만이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계적으로 미수금이란 소비자에게 청구했는데 받지 못한 돈이다. 그런데, 미수금 회계가 특이하게 적용이 된다. 이 역시 정부지원의 일부이다. 회사가 소비자에게 청구하지 않지만, 실제 비용에 기반한 전기세를 계산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승인을 받고, 실제 청구한 금액을 뺀 후 미수금으로 계상한다.  

 

전기세가 갑자기 오르면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물건을 만들어 수출할 수 없다.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이지 못하면,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또한, 유권자가 살기 힘들어지면, 정부에 대한 반감이 일고, 해당 정권은 선거에서 표를 받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화 속에서 H사는 운영되어 왔다.  

 

H사의 최대 주주는 정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에게서 받는 전기세는 세금과 같다. 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전기세가 비용에 연동이 될 수 있을까? 표를 잃기 두려워하는 정부가 그러한 결정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적자가 지속되는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 정부는 계속 출자를 할 수 밖에 없고, 이 역시 우리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조달이 된다. 

 

전기세를 비용에 연동시켜, 기업이 적자상태에서 벗어나고, 재무상태를 건실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전력공급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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