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읽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저게 고추를 달고 나왔어야 했는데......

by 글쓰는 금융인

명절 때면 내려가는 “시골”이 너무 싫었다. SBS가 나오지 않아서, 내려갈 때마다 차 안에서 멀미를 해서였지만,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저게 고추를 달고 나왔어야 했는데......”


라며 말투는 안타까운데, 표정은 웃고 있던 할아버지를 보는 것이었다. 성별에 대해서 하는 부정적인 말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나의 선택으로 결정된 성별이 아니고,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와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무엇이든 하려고 애쓰는 어린 나였지만, 할아버지의 말로써 어떻게 해도 나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면,

주위에서는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 중학교 가면 남자애들이 치고 올라와.” 라고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남자들이 더 우수해진다는 말을 누누이 들었다.


대학교에서도 차석으로 졸업을 하니, 주위에서는 “사회에 나가면 남자들은 경쟁 상대가 아니야. 공부 잘해봐야 소용없어.” 라고 했다.


여성은 왜 차별을 당하는가 하는 질문이 삶을 지배했다. 여러 책을 찾아봤지만 알 수 없었고 사회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들을 해석하다 이유 찾기를 포기했다.


글쓰기 선생님의 권유로 들어간 독서모임에서 “토지”를 만나 몇 개월 동안 읽었고, 마침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토지는 1890년대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주권을 잃었을 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최참판댁을 배경으로 시작했다. 노비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의식주를 해결하던 양반집에서 나가라고 해도 갈 곳이 없는 시절이었다. 최참판댁 마을 사람들은 그 집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jpg 토지의 배경

당시 여성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례로, 노비 삼수는 마을 처녀 두리와 혼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봉기는 삼수의 그런 마음을 알고 그가 몰래 나눠주는 최참판댁 흰쌀은 받아 얻어먹으면서도, 절대 노비에게 딸은 주지 않겠다고 한다. 복수를 결심한 삼수는 그의 딸을 겁탈한다.


부모는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겁이 나서 크게 울지도 못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삼수는 그저 두리를 데리고 살아주면 되고, 두리는 삼수 외에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삼수는 당당하게, 두리와 그의 부모를 조롱하며 어디 한번 떠들어 보라고 한다. 두리는 어디에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사건을 숨긴 채 부모는 딸은 부족한 집으로 빠르게 시집을 보내 버린다.


그와 같은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태도는 당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가를 보여 주었다.


원초적인 힘에 의해서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성들은 좋은 삶을 살 수 없었다.


박경리 작가는 “여성은 결혼을 통해서 자신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남편에게 주고 그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 는 문장으로 이를 표현했다.


슬프게도 이 땅에서 태어난 여성은 참으로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남성도 편하지 않았다. 그것은 여성을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원인을 몇가지로 정리했다.

1. 이조 500년 동안 공고해진 유교 사상으로 여성들의 지위가 남성들에 비해서 말도 못하게 낮았다.

2. 일제 강점기를 통해 일본이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면서 수없이 핍박을 받았다. 많은 남성들은 죄 없이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한다. 이는 비뚤어진 인성을 가지게 했다.

3. 외부의 힘에 의해서 양반제도가 무너짐으로써 기존에 양반이었던 남성들은 그 나름대로 무슨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술로 세월을 지샌다.

4. 공부를 많이 한 신여성들도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어떠한 역할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더 비참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여성은 공부를 하면 더 힘들게 산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토지를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100년 이상 겪어온 것을 생생히 보니, 조부모가 왜 그렇게 말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그때 진실이라도 지금은 아니다. 사회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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