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 은행 다녀요. 아니, 기업분석해요.

나는 무슨 일을 하는가?

by 글쓰는 금융인

나는 16년차 기업분석가이다. 현재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미래라는 말을 믿는다. 그런데, 내가 원해서 들어온 회사인데, 괴롭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왠지 내가 일을 잘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갭이어를 마치고 복귀를 해서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관련 과를 나왔고, 대학원에도 갔지만 정말 실무에서 일을 잘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하는 일은 본질은 기업을 분석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내 기호에 딱 맞게 이것을 배울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글쓰기 수업에 등록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오프라인 수업은 불가능했다. 다행하게도 온라인 수업을 찾을 수 있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한겨레 “브런치 작가되기” 과정에 등록을 했다. 수업 시간이 아이 저녁을 차려주는 시간이라서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첫 수업을 앞두고 아이 저녁 거리로 자반 고등어를 샀다. 내 가방에 노트북이 아닌 생물고등어가 들어있는 그 느낌이 이상하지만 살짝 뿌듯했다. 저녁 8시 수업 시작 전에 자반고등어를 구워서 아이에게 먹이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구워보는 자반고등어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잔뜩 긴장을 한 채로 어떤 후라이팬을 써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오일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가늠을 하고, 불을 올렸다. 아차. 고등어 손질이 잘 안되어 있다. 물컹한 느낌을 견디어 내며, 가위로 비늘을 자르고, 물기를 살짝 닦아 내고 후라이팬에 올렸다. 지글지글 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각보다 고등어가 잘 익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잔뜩 긴장한 손으로 몇번을 뒤집었는지 형체는 보기 어려웠지만 포슬포슬하게 완성이 되었다. 고등어를 우걱우걱 입에 넣고, 아이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남편에게 아이 숙제를 부탁하고, 수업하러 방으로 들어왔다.


고등어.jpeg 노트북을 대신해서 내 가방에 들어있던 생물고등어

방문을 닫고 아주 작은 독서실 책상에 앉는 순간,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보통 아이 숙제를 봐주며 닥달하던 그 시간을 나의 배움으로 채워나가는 데 기분이 이루말할 수 없이 좋았다.


같은 수업을 듣는 십여명이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했다. 내 순서를 기다리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은행에서 기업분석하는 글을 쓴다고 자기 소개를 했다. 모두의 소개가 끝난 뒤, 선생님은 “글쓰기를 업으로 하신 분들이 꽤 들어오셨네요”라고 하셨다. 나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첫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은

1.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쓸 것 (그래야 지속 가능한 글쓰기가 되기 때문).

2. 좋은 글의 조건은 정보, 재미 혹은 감동 중 하나는 있어야 함.

3. 성인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배워서 쓰는 것 (그래야 정보를 줄 수 있음)

이라고 말을 하셨다.


재미나 감동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나는 내가 업으로 삼는 기업 분석에 대해서 쓰면 정보는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 했다. 첫 몇 주간의 나의 글은 회사에서 하던 식으로 숫자가 너무 많았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쓰던 글은 대중을 대상으로 쓰기에는 맞지 않다고 하셨다. 하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쓰자니 당췌 어디서 부터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온라인 과정을 마치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이후에는 왠지 내가 글을 술술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쓰는데, 처음의 포부와는 달리 점차 시들해져 갔다. 그 이유는 나의 글을 누가 읽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브런치 과정을 같이 마친 동기들은 나에게 댓글을 달아 주었지만, 그건 그냥 의례하는 것 같았다. 지속적은 글쓰기는 참 힘들었다.


결국 같은 선생님의 다른 수업인 “단단한 초고쓰기” 과정에 등록을 했다. 이번 단체 수업에는 저번 보다 소수였다. 지난 번과 이어서 같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으니 왠지 선생님이 나를 잘 봐주시는 것 같았고, 저번보다 내용이 발전되어서 좋았다. 그렇게 해서 브런치에도 글을 더 쓸 수 있었다. 과정을 마치면서 출간기획서 쓰는 것까지 배웠다. 하지만 막상 출판사에 투고를 하려면 원고의 80%이상이 완성이 되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휴직을 했어도, 집안 살림과 아이케어로 글쓰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이번에는 같은 선생님의 “계속쓰기” 과정에 등록을 해서 개인 수업을 받았다. 한 시간씩 선생님과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은 단체 수업보다 더 좋았다. 물론 비용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처음에 등록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주변에 유튜버로 유명해지고 책을 낸 출간한 지인이 있어, 상담을 했더니, 본인은 투고를 한 것이 아니라, 유튜버로 유명해지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출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이미 기획을 해서 오기 때문에, 그렇게 글쓰기 수업을 받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다른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것 보다 이미 잘 아는 선생님에게 계속 배울 수 있는 것도 좋고, 앞으로 복직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수업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아이를 도맡아 키우고, 살림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숙제라는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남는 짬에 글을 쓰고, 아이를 학원에 넣어 놓은 후 짬에 글을 쓰고 그렇게 시간을 알차게 채워 나갔다.


선생님은 글쓰기 전문가지만 기업분석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 밖의 사람이 나의 글을 읽어 주는 것은 첫 경험이었다. 선생님의 피드백을 통해서 대중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단순히 글을 검토해 주신 것이 아니라, 기획을 해 주셨다. 어떻게 써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기획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휴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준 부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수업 중에 선생님은 "기업 분석은 기업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잖아요"라는 말을 은연 중에 하셨다. 이 말이 나에게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내가 16년 동안 해 왔던 일인데, 나는 나의 일을 정의한 적이 없었다.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무슨 대단한 것을 이루겠다고, 아이를 불쌍하게 남의 손에 맡기고 밖에 나와서 일을 하냐는 무언의 압박에서 나를 지킬 길이 없었다. 남자들의 무대에 끼여서 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잡혀 있었다. 그런 마음의 짐에서 한 발짝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을 하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은행 다녀요.” 대신 “기업분석을 해요.”라고 말한다. 은행을 다닌다고 하면 흔히 창구 업무를 생각하거나, 막연히 금융권에서 일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 보다는 기업분석이라는 것이 나의 일을 더 잘 설명하기 때문에 타인과 소통을 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애초에 나의 목표는 책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기업분석 능력을 향상시킨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나의 능력을 개발하고 있었고, 회사 사람들이 나에게 분석을 잘했다고 얘기해준 적은 없었지만, 나는 이미 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이 일을 통해서 어떠한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몰랐을 뿐이며, 이것이 나의 미래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복귀해서 할 일은 나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며, 이 일을 계속 해 나감으로써, 일반 대중에게도 기업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다. 글쓰기 수업의 방향은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지만, 그래도 회사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려는 내가 원했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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