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한 돈은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
먼저 휴직했던 동네 지인이 조언을 해 주었다. 시민회관에 스피드 스케이트 수업이 저렴하고 체력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운동에 소질이 없는 본인이 하고 있으니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용기를 주었다.
개인이 가진 자산은 시간과 체력이라는 것을 믿는 나는,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체력을 기르기로 다짐했다.
처음 스케이트를 사서 신던 날을 기억한다.
빙상장 벤치에서 신는데, 발이 너무 아플까 봐 겁이 났다. 역시나 발이 아팠다. 조심조심 링크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난간을 잡지 않고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촉감이 너무 이상했다. 미끌미끌한 얼음 위에 서 있는 것이 말이다. 첫 수업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자는데 그 미끌 미끌 하고 차가운 느낌이 꿈에까지 나왔다.
단체반 수업에는 보통 10명 정도가 나왔다. 분명히 초급반이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이 분들의 포스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매번 생각하며 수업에 나갔다.
밀고 모으기, 찍기 까지는 근면 성실함으로 따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코너는 당혹스러웠다. 빙판에서 한 발을 들고 한 발로 버티다가 다른 쪽으로 넘겨야 하는 것이었다. 그야 말로 발넘기기.
고비가 왔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해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진도가 빨리 나가도 참을 수 있었다. 나와 같이 잘 못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그 분들은 한 달이 안 되서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누워 있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빙상장에 나왔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무래도 이렇게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단체 수업에 나와서 민폐만 끼치고 있다고 말이다. 시간이 아까우니 개인 강습을 받아 보라고 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역시 또 돈이구나. 돈을 쓰려면 분석을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휴직 기간이 길지 않아, 낮에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 지불용의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가진 돈이 유한한 것처럼, 시간이라는 자산도 유한하다.
개인 강습에 들어갔다. 선생님이 잡아주니 발 넘기기가 잘 되었다. 내친김에 지상훈련까지 더해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1대1 피트니스보다 저렴하다며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렇게 주 5회 스케이트를 탔다. 신기하게도 몸의 변화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땅을 밟고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학창시절 체육 시간이 싫었다. 체력장은 매년 5등급이었고, 달리기는 반에서 꼴지였다. 내가 뚱뚱하거나 했으면 이해라도 받았을 텐데, 운동을 잘할 것 같은 몸으로 꼴지를 하니 다른 사람이 의아하게 보는 눈빛까지 견뎌야 했다.
그렇지만 공부는 자신이 있었다. 하루에 24시간은 분단위로 나눠서 매일 몇 분을 어떤 과목을 공부했는지를 써가면서 나는 공부했다. 잠은 8시간 이상 자면서 말이다.
무식하게 시간 투자하는 방식으로 스케이트를 배웠다. 느리지만 조금씩 체력이 느는 것, 남들보다는 하염없이 느리지만 어제보다 발이 수월하게 넘어가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선생님은 나와 마주보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아빠를 따라가는 아이의 마음으로 선생님의 눈만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놀렸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따라가 졌다.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 주고 도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몸이 얼음판과 엄청나게 가까워 있는데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최고난이도는 꼬깔 잡고 코너 돌기다. 활주할 때 자세를 낮추기 위해서 하는 연습이다. 꼬깔은 높이가 약 15센치 정도 되는, 코스를 설정하기 위해서 깔아 두는 빨간색 플라스틱이다. 그렇게 낮은 물건을 잡고 발넘기기를 하려면 얼음과 한몸이 될 만큼 몸을 낮추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을 줘야 한다. 나의 인생에 이것이 가능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이트를 배운지 1년 반 만에 혼자 성공했다. 납작해진 나의 몸에서 발이 넘어갔을 때 희열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성공한 후 얼음판에서 넘어져서 발이 아프고 허벅지에 갈린 얼음들이 묻었을 때 아프기보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스케이트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몸의 중심 떨어뜨리기였다.
모든 것을 머리로 생각해서 살아왔다. 그걸 남들보다 잘해서 분석하는 일을 택했지만, 나와 비슷하게 머리를 잘 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근면성실하게 공부하듯이 일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던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머리와 어깨가 항상 아팠고, 위염도 늘 있었다.
얼음판 위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비워졌다. 머리를 쓰고 있을 틈이 없었고, 어깨에 힘을 빼고 얼음판위에 1미리 날을 의지하고 나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의지해서 어떻게든 해야 했다. 머리로 갔던 피와 에너지들을 아래로 자꾸 떨어뜨려야 했다.
복직을 앞두고 회사에서 전화만 와도 위염이 도졌다. 하지만 다시 몸을 쓰니 약을 먹지 않아도 소화가 되었다. 내 분야가 아닌 것에 도전해 보는 것, 중년에도 의미가 있다. 아니 중년이라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머리형 인간으로 살았다면 앞으로는 장형도 되어 보는 것이다.
또, 매일 빙상장에 나가서 알게 된 것은, 나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자판을 두들기고 숫자에 시달리며 일하는 것 만큼이나 빙판에서 가르치는 일도 힘들다. 차가운 얼음판 위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사람들을 잡아주면서, 4계절 내내 패딩을 입고 가르친다.
현대 사회가 돈의 권력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을 싫어 한다. 그 말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돈을 뿌려야 한다는 뒤에 따라오는 말이 싫어서이다. 나는 돈의 가치를 믿는다. 돈이라는 것은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돈을 쓴다는 것은 마음가짐의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쓰는 그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계산을 해보니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약 5만원의 돈이 들어갔다. 정말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5만원!”을 생각하면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5만원이면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 있는데! 5만원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면서 말이다.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가 한 달, 일 년 , 십 년, 전체 인생을 결정한다. 정말 하기 싫어도 한번 해보고 돈이 너무 아까워도 낸다. 그리고 내가 쓰는 돈을 투자로 만들 것인지 소비로 만들 것인지는 나의 몫이다.